▲사진: 서영주 어크로스건축사사무소 대표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수석부회장)
‘7세 의대반’, ‘라이딩맘’ 과 같은 조어를 비롯한 사교육이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 사회. 선행학습이 보편화되고 속도 빠른 미디어를 통한 많은 정보에 습관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교사의 역할은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학부모들로부터 교사들의 인권이 잦은 민원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을 듣게 된다. 이는 교사들에게 심각한 업무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교직을 그만두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울러 외국의 교사 생활을 한 이들은 한국 교사들의 과도한 행정업무에 놀란다. 수업 외의 부가적인 요구가 많은 여건에서, 교사는 학생의 성장을 이끄는 교육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러 관계인들 사이의 중간 관리자 같은 여건에서 교사들은 위축된다. 학교는 점점 더 편안하지 않은 근로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고, 이는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단지 정책이나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사가 일하는 물리적 공간, 즉 학교 건축 역시 이러한 교사들 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미래 학교의 논의에 있어서도 학생들 못지 않게 중요하게 배려되야 하나,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이 교사들의 영역이라 생각된다.
‘학교’하면 떠오르는 긴 복도에 줄지어진 학교 교실의 풍경. 교실 영역, 특별교실 영역, 교사 영역으로 구분된 학교 공간은 어느 지역에서나 기능이 고정된 구조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표준화된 관리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여건에서 교사 공간은 지나치게 경직된 방식으로 계획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는 교실 안에서는 수업과 학생 관리를 책임지는 관리자 역할의 자리에 머문다. 교무실에서는 개인 책상에 한정된 행정 업무의 조직 문화 속에서 경쟁과 관리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처럼 폐쇄적이고 경직되며 일방적인 공간 구조는 교사들이 본연의 역할인 연구, 상담, 협의, 창의적 수업 개발을 수행하기에 매우 비효율적이다. 개개인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부족하며, 오히려 교사의 소진과 위축을 유발하는 구조적 원인이 되곤 한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교사는 무엇보다 적은 학생수를 책임지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교사 공간을 학생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 환경의 일부로 인식하며, 그에 걸맞은 유연하고 여유로운 공간 을 설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Ørestad Gymnasium은 교사 전용 사무실을 폐지하고, 교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개방형 워크스테이션과 회의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협업 중심의 교육 문화를 실현하고 있다. 교사들은 고립되지 않고 항상 서로 협의하며, 학생들과도 가까운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또한, 미국의 Cougar Elementary School은 교실 밖 복도에 교사 전용 사무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교실은 수업 중심으로, 교사 공간은 자료 준비, 상담, 회의 중심으로 기능을 구분하고 있다. 교사는 진정한 ‘교육 전문가’로서의 위상을 되찾고, 학생의 학습을 깊이 있게 지원할 수 있게 배려되어있다.
한국 학교에서도 이제는 이러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자들중 유치원의 돌봄 교사는 돌봄과 놀이 중심의 역할을 수행하고, 대학 교수는 연구와 강의 중심의 자율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교, 초·중·고 교사는 수업과 생활지도, 행정과 상담, 학부모 소통까지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다양한 관계인을 대응하는 교육 주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물리적·정서적 공간은 가장 미흡하게 다뤄지고 있다.
좋은 미래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 업무 공간의 분산과 전문화가 필요하다. 교무실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모든 교사가 밀집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교과별, 학년별, 역할별로 기능이 분산된 유연한 공간 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소규모 협의실, 학생 상담실, 교사 공동 연구실, 조용한 개인 업무실 등을 함께 구성한다면 교사들은 자신의 업무 특성과 성향에 따라 공간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 간 협업과 창의적 수업 개발을 위한 공유 공간이 요청된다. 이는 단순한 회의실이 아니라, 공동 커리큘럼 개발, 프로젝트 기반 학습 설계, 수업 피드백 등을 나눌 수 있는 라운지형 워크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교육과정의 질적 향상으로 연결된다.
교사의 휴식과 심리적 회복을 위한 배려 공간도 필수적이다. 하루 종일 긴장 속에서 학생을 대하고, 민감한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다. 이러한 교사의 휴식과 회복을 위한 공간도 정식 교육공간의 일부로 포함되어야 한다. 햇살이 드는 테라스, 조용한 명상실, 식물과 나무가 어우러진 쉼터 등은 교사의 정서 안정과 전문성 회복에 필수적이다
이제 학교건축은 획일적인 기능 배치에서 벗어나, 사용자 중심의 심리와 행태를 고려한 교육 생태계 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 공간의 철학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학교는 더 이상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함께 머물며 성장하는 작은 사회이자 공동체의 장으로서의 역할이 더 요청된다.
학교에서의 시간 동안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사이에 ‘인격적인 만남’과 ‘교류’,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람을 기르는 공간인 학교. 그 공간이 따뜻하고 유연해야, 그 안에서의 교육 또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
교사의 역할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간 설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소망하는 진정한 교육의 본질에 더 가까운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교사가 행복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때, 그 영향력은 고스란히 학생에게 전달된다. 경직된 교사 공간을 유연하고 자율적인 전문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래 학교 교육의 출발점이다.
.gif)
.jpg){kind=small}
.jpg)
.jpg)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