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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우리학교는 시골학교
선생님은 3명
아이들은 19명
줄넘기 19개
작은 수돗가
학원가면 아이들은 물어본다
“너희 학교 전교생이 몇 명이야?”
“19명”
“헉~ 전교생이 우리반 반도 안되네”
우리학교 전교생이 19명이에요
고모한테 말하면
고모는 씩 웃으신다

-횡성초등학교 당평분교장 6학년 김민희

일단 학교 주소부터가 길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추동리 70번지 횡성초등학교 당평분교장. 전교생 9명 중 제법 소녀티 나는 민희는 이 학교 6학년이다. 민희의 시작(詩作) ‘시골학교’는 3년 전 전교생이 19명이었던 당평초등학교가 배경이다. 19명이던 아이들은 이제 9명으로 줄어 올해부터 학교는 당평분교장으로 문패를 바꿨다. 당평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본지 기자들이 학교를 방문, 동행취재 했다.

시종 소리 없어도 척척 움직이는 당평 아이들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등교시간. 도시학교 아이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향할 시간에 당평 아이들은 손에 줄넘기를 들고 운동장으로 모인다. 지난밤 잠들었던 심신을 깨우기 위해 줄넘기하는 동작이 경쾌하다. 교실로 돌아와서도 아이들은 시종일관 움직인다. 몸을 깨웠으니 이번에는 뇌를 깨울 차례. “멍멍멍 멍멍멍멍 멍멍멍” 박자에 맞게 움직이는 모습은 순박한 강원도 산골 아이들답게 수줍어하면서도 씩씩하다. “나는 사명을 띠고 대한민국에 태어났습니다” 외치며 쎄쎄쎄를 하고 리코더를 분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친다. “교사가 돼서 글을 쓸 거예요” “방송국 PD가 꿈이에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큰 소리로 장래희망을 외치고 명상까지 하면 시간은 어느덧 11시. 당평의 아이들은 매일 아침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잠들었던 뇌를 깨운다. ‘뇌 깨우기 운동’은 김경우 교사가 개발한 교수법으로, 뇌 깨우기 운동 중 깔깔 대는 아이들 소리는 시종 소리가 없는 당평분교장의 시그널이다.

쉬는 시간=15분, 1교시=오전 11시

# 쉬는 시간은 15분. 약속이나 한 듯 아이들은 밖으로 나간다. 옆교실에서 수업 받던 4학년 명혜와 은총이도 나와 수돗가 주변으로 핀 들풀과 꽃밭에 가서 앉는다. “학교에 오면 꽃 이름을 많이 알게 돼요” 강원도에서 태어나 쭉 자란 은총이는 웬만한 꽃 이름을 다 꿰고 있는 듯하다. 옆에서 꽃 구경하던 명혜도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는 식물을 관찰하느라 바쁘다. 한쪽에서는 고학년 아이들이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들풀 같은 6학년 봉수와 나무 같은 상봉이, 바람 같은 준혁이는 학교를 둘러싼 웅장한 산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야호~”

첫 수업은 오전 11시를 넘기고서 시작됐다. 1교시 수학시간. 1학년이 없는 당평분교장은 외부강사가 2학년 현균이를 지도한다. 5, 6학년 복식 수업을 담당하는 김경우 교사는 5학년 준혁이에게 맞는 진도와 수준으로 1:1 수업을 진행하고, 지난 시간 블록 쌓기 문제를 틀린 민희는 혼자서 입체 블록을 쌓으며 왜 틀렸는지 알아본다. 수학 진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앞선 봉수와 상봉이는 틀린 문제를 가지고 토론수업 한다.

같은 시각 4학년 교실에서는 은총이와 명혜가 덧셈과 뺄셈이 섞여 있는 문제를 푼다. 이길남 부장교사는 아이들이 푸는 동안 숙제를 검사하고 틀린 답안에 맞는 설명을 준비한다. 한 학년 아래인 희정이와 윤하는 3학년 수학 교과서에 나온 ‘철수와 미루’를 복사한 종이를 색칠해 순서에 맞게 이야기를 연결한다.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을 수동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다각적으로 해답에 접근하며 움직인다. 이것이 당평식 1:1 맞춤형 수업이다.

입장단에 호흡까지 수준급 사물놀이

# “덩덩쿵덕쿵 덩덩쿵덕쿵 더더더덕쿵덕쿵” 개구쟁이 윤하가 사물놀이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에게 “궁따궁 궁따궁 궁 따궁다궁따궁다” 자진모리를 입장단으로 들려주자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9명의 아이들은 작은 풍물패가 되어서 장구와 꽹과리, 북, 징을 잡고 소리굿을 시원하게 낸다. “하늘 보고 별을 보고 땅을 보고 농사짓네” 입장단에 호흡까지 척척 맞는 아이들 중 상쇠를 맡은 봉수는 단연 돋보인다.

학교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산이 전부인 강원도 횡성에서 수준급 사무놀이를 선보일 수 있는 이유는 학교와 교육청의 아낌없는 예산 지원 덕이다. 자연 경관이 좋아 심성 단련과 전인교육에는 안성맞춤이지만 도시에서 그 흔한 학원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다. 놀이, 문화 시설은 언감생심이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는데 한계가 있다. 악기도 배우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은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곳은 학교가 유일하다. 때문에 예산 지원이 절대적이다. 그래서 이번에 시작한 바이올린은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남다르다. 1인당 한 개씩 악기가 지원 돼 대도시 학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방과후 음악교실이 진행된다. 아이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서 그림그리기도 꾸준히 이어진다. 덕분에 아이들은 시군에서 주최하는 외부 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도 잊지 않는다. 원어민 강사가 학교에 내방, 영어회화 교실도 적극적으로 운영한다.

교사들의 노고도 빠지지 않는다. 김경우 교사는 산이 좋고 물이 좋아 강원도로 자진해서 내려온 케이스다. 학교 뒤 공터 관사에서 지내며 아이들이 마음껏 쓸 수 있는 ‘글쓰기 노트’를 만들어 아이들의 하루 일과가 멋진 시로 태어나는데 일조했다.

폐교될까 노심초사…마을에 생기 주는 학교

# 농어촌 소규모 학교나 도서벽지 학교는 복식수업, 실험실습기자재 부족, 경쟁의식 결여 등이 문제로 작용하지만 당평분교장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진학생은 교사들이 1:1 맞춤형 교육으로 돌보고, 학교 예산은 9명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편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수는 당평분교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신입생이 들어오는 당분간은 괜찮지만, 늘상 폐교의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

이길남 부장교사는 “학생수 50명 이하부터는 폐교 대상”이라며 “전형적인 농촌생활을 꾸려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생기있는 곳이 학교”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사는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거나 특별행사를 하게 되면 마을 잔치가 된다”며 “부족한 살림이지만 손수 음식을 만들어 학교로 가지고 오는 시골 인심이 학교를 풍요롭게 한다”고 덧붙였다.

횡성초등학교 당평분교장 장기하 교장은 “소규모가 학교가 속한 농촌마을은 지역 특성상 학생 수가 적어도 보존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