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후배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7월18일 오후, 그 날도 남산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조금 늦은 시간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차안에서 긴급속보로 들려오는 앵커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공주사대부고 학생들 5명이 해병대 캠프 중 실종되었습니다.”
‘공주사대부고? 내 모교가 아닌가?’
그 날 밤 믿기지 않다는 듯, 살아 있을 거라는 실가지 같은 희망을 서로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듯 동문들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렇게 나는 동문들과 함께 실종된 5명의 후배들이 무사히 구조되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이틀간의 수색 작업 끝에 실종자 5명 전원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잇달아 들려오면서 나는 밀려오는 슬픔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최근 공주사대부고는 일반고에서 자율학교로 바뀌면서 전국에 있는 중학교에서 내신 3%안에 드는 학생들이 지원할 정도로 공주는 물론 전국에서 손꼽히는 인재양성 학교로 거듭나며 우리 동문들에겐 기쁨이요, 자랑이었습니다.
"수영 못하는 아이들을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고 앞으로 3보, 앞으로 3보 했대요. 나는 수영을 못 한다고 해도 수영을 하건 못하건 무조건 하게 했대요."
원칙만 준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는데, 인재(人災)로 인재(人才)를 잃은 무지막지한 참사였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통탄하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5명의 애절한 후배들의 장례식장이 그들의 푸른 꿈이 남아있는 모교에 준비되었습니다. 그 동안 기숙사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으며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급우들이 영전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하며 눈시울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내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빈 책상, 빈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임자 잃은 교과서, 그리고 생전에 축구를 좋아했다고 누군가 마지막 선물로 놓고 갔다는 새 축구공, 그러나 이제 다시는 그 교정에서 함께 뛰며 함께 웃으며 달릴 수 없는 친구들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무엇보다 서로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생사가 엇갈리는 참혹했던 그 순간에도 교관이 구조해 주리라는 믿음이 무참히 무너지면서 손에 손을 잡고 서로가 서로를 구조해 냈다는 후배들의 말에서 끈끈한 우정이 느껴져 뜨겁게 눈물짓습니다.
그렇게 놓을 수 없었던 손이었는데…….
“친구야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서 미안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져간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오열하는 후배들!
그 마음에 남아 있을 상처가 애절하여 제 가슴이 또 한 번 미어집니다.
그 동안 집에도 오지 못하고 1분 1초를 아껴가며 공부만 했던 아들이 안타까운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선 교복 벗고 공부 걱정하지 말라.’며 마지막 보내는 사진 속 모습이라도 평소에 즐겨 입던 옷으로, 활짝 웃는 얼굴로 해 주고 싶어 했답니다.
그리고 아직도 살아서 돌아올 것만 같은 아들의 영전 앞에 향을 피우며
‘너를 어떻게 보낸단 말이냐’ 울부짖는 부모님들!
순간순간 혼절하는 어머니 앞에 나 또한 교육계의 일인으로서 고개를 숙입니다.
공주사대부고의 사랑했던 후배들!
여러분은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친구들에게는 참다운 벗이었으며 동문선배들에게는 믿음직스런 꿈이요, 미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문 선배로서, 그리고 자녀를 기르는 부모로서 못내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다시는 부르지 못할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
“김동환, 이병학, 이준형, 장태인, 진우석.”
삼가 다섯 명의 동문 후배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는 부디 모든 걸 내려놓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밝은 해로 떠오르길 빕니다.
그리고 부모님들과 재학생 동문 후배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 어른들의 실책으로 잃어버린 동문 후배들의 참사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참회하며, 다시는 이런 어이없는 인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기억되길 기원합니다.
공주사대부고 19회 전 병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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