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좋은 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어도 막상 실전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연기학원에 다녔어도 진학에 필요한 연기를 배워서 정작 다양한 연기를 펼쳐야 할 때는 오히려 그것이 나쁜 습관으로 자리 잡아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다.”
“청소년들이 배우의 길로 진로를 선택할 때는 철저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배우를 하겠다는 확고한 다짐이 전제 돼야 한다.”
첫인상이 아이러니하다. 까칠해 보이는 인상 너머 선한 얼굴이 동시에 겹쳐 보이는 묘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처연하게 희뿌연 담배를 내뿜으며 슬픈 연기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때론 거친 각목처럼 바짝 날이 선 채로 세상을 향해 절절하게 자신을 내보이는 독한 연기가 잘 맞을 것 같은. 아니면, 따뜻한 가슴을 온전히 품은 채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유쾌한 얼굴로 무대위에 ‘착한 주인공’이 마치 자신의 본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배우로서는 상당히 유리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배우 강석호다.
올해로 38살. 내일모레 마흔을 앞둔 그가 하는 연기는 필터로 한번도 정수되지 않은 채로 때론 슬프게, 때론 거칠게, 때론 아프게 그렇게 관객에게 고스란히 날 것 그대로 전해준다. 그렇기에 무대에서 자신이 가진 다양한 색상의 원석이 그대로 빛을 발한다. 한마디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
여전히 연기의 갈증이 완전히 연소되지 않는 그는 작품에 임할 때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아직도 성장통을 심하게 앓고 있는 소년처럼 그저 순수하고 애달프고 아프다.
연기에 대한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서른여덟 살 소년의 성장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건,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기교 덕분에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특정 배우에게 허락된 태생적인 재능이랄까. 그에게는 타고난 특유의 진지함과 어둠, 표현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살아 움직인다. 자신은 아직도 부족해서 하루에도 수십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이 배우의 갈증이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강석호는 아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대학로 연극무대에서는 그의 연기 내공을 인정받았다. 연기력과 동시에 수준급인 노래실력도 갖춰 뮤지컬 쪽에서도 많은 러브 콜을 받고 있다. 현재는 트랜스젠더인 하리수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뮤지컬 ‘드랙퀸(4월5일~6월2일)’의 주인공 홍사장 역으로 분해 관객들을 찾아가고 있다. 또한 모홍진 감독의 영화 ‘사모곡’에 캐스팅되어 현재 촬영 중에 있다.
어린시절부터 피아노와 그림에 관심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할 수 없었다는 그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세종문화회관에서 단체관람으로 본 뮤지컬 ‘에비타’를 보면서 무대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이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무슨 뮤지컬을 본다고 그러는지 불만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날 뮤지컬을 보는데 그 ‘무대’ 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저 그 무대에 빨리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무척 컸던 거 같아요.”
연기가 아닌 ‘진짜’가 되기 위해
이후 배우의 꿈을 꾸면서 고 2때 케이블 방송국에서 신인으로 뽑힌 그는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국 등 여러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자신과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좀더 깊이 있는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감독들이 웃으라고 하면 웃고, 걸으라고 하면 걸어야 하는 연기가 저에겐 너무 답답했던 거 같아요. 진지하고 다양한 연기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컸던 거 같아요.”
단순히 인기스타나 연예인이 되기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그는 연극이라는 장르를 알게 되고 바로 대학로로 향했다. 당시 만해도 지금처럼 연기학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온 몸으로 부딪히며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대학로 여느 배우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몇 십 킬로를 걸어 다니며 포스터 부치기부터 때론 아동극도 하고 극단의 객원 활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요즘은 좋은 연기학원들이 많아서 배우 지망생들이 어렵지 않게 연기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지만, 예전에는 한 가지를 배우기 위해서는 때론 수개월이나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거 같아요. 하나를 배우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오롯이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면서 배웠던 거 같아요. 운 좋게 좋은 선배들로부터 연기의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익혀나갔어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배웠던 거 같아요.”
강석호는 진정한 자신의 꿈을 위해서 ‘대학’보다는 몸으로 부딪히는 ‘대학로’를 선택했다. 오로지 연극무대와 자진하여 연출부 막내로 들어간 영화촬영(당시 김희철 감독의 ‘지상만가’) 현장을 통해서 자신만의 배우수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후 그는 21살 때 드디어 ‘광인들의 축제’에서 신원장이라는 노인역으로 연극무대에 데뷔했다.
“연극 ‘광인들의 축제’는 처음으로 무대라는 땅에 섰던 작품이에요. 그때는 지금의 아이들처럼 연기를 잘하진 못했을 거예요. 그저 연습한 것에 대해 표현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처음 배우의 꿈을 꾸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때 연극을 하면서 다짐했던 건 ‘스타가 되려고 노력하지 말자.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자’였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가 출연한 영화 작품은 2010년 로마국제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던 허은희 감독의 ‘심장이 뛰네’와 이하나 감독의 저예산영화인 ‘슬리핑뷰티’ 등 이다. 그는 배우로서 조금이라도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작품보다는 다양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에 주로 끌렸다고 한다. 인터뷰하는 중간에도 자신은 늘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감’과 ‘부족함’을 함께 가지고 가야하는 게 배우의 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되,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병행해야 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일까. 그는 뮤지컬을 연습할 때면 하루 연습량을 다 채우고도 부족해서 잠자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그 작품에 올인 하다시피 한다. 그렇게 연습해야만 무대에 자신감 있게 설 수 있다고 한다. 지나친 겸손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가 영화 촬영이 없어도 평소 입고 다닌다는 교복(영화 ‘사모곡’ 출연의상)을 겉옷 안에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그는 단순히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가 되기 위해 자신의 일상생활마저도 온전히 희생시켜버리는 진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배우 지망생, 철저하고 냉철하게 자신을 평가해야
그런 그가 배우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가끔 가르치면서 느끼는 건, 요즘 배우 지망생들이 연기에 대해 혹은 인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영상세대답게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합니다. 타고난 재능과 끼가 많은 아이들이 있지만 재능과 끼를 너무 믿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린나이에는 그런 재능과 끼로 빛을 볼 수 있지만, 본인이 계속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연기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좋은 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어도 막상 실전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연기학원에 다녔어도 진학에 필요한 연기를 배워서 정작 다양한 연기를 펼쳐야 할 때는 오히려 그것이 나쁜 습관으로 자리 잡아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조언해준다.
학생들이 가끔 가슴으로 익혀야할 것들도 머리로만 익히는 것을 자주 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인생이나 연기 등 무엇인가 깊고 진지한 고민을 병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연기학원보다는 다양하고 깊은 연기를 펼친, 서른 살이 넘은 좋은 연기 선생님을 찾아서 개인 레슨을 받는 것을 추천해준다. 그는 배우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 진지하게 연기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자신을 냉철하게 평가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우의 길을 걷는 건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희생할 것도, 포기해야할 것도 너무 많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힘든 부분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포기할 때는 이미 늦어서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 역시 여전히 하루하루를 자신과의 싸움으로 보낸다는 그는 청소년들이 배우의 길을 선택할 때는 철저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배우를 하겠다는 확고한 다짐이 전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석호는 ‘연기를 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표현 한다’라고 말한다. 어린시절부터 무언가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는 그는 아마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표현 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그의 생활을 지탱해줄 만큼 아직도 뜨겁게 연기를 사랑하고 있는 그의 다음 작품이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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