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고영구 지역의 전환 연구소장
한국의 고등교육은 지나치게 사학에 의존하고 있다. 전체 대학의 85% 이상이 사립이며, 재학생 기준으로도 약 78%를 차지한다. 경제성장과 사회구조 변화의 시기에 사립대학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교육의 공공성과 질적 수준이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인재 양성의 책무를 지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사학재단에 전적으로 맡겨온 셈이다. 그 결과, 대학 간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지역 간 교육 불균형은 고착되었으며,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신뢰 역시 낮아지고 있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 고등교육의 공공성은 최하위권이다. OECD 국가의 평균 국공립대학 비중은 약 70%에 달하는데, 한국은 20%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제기되는 것이 바로 ‘공영형 사립대학’ 체제다. 사립대학의 법적 틀은 존중하되, 정부의 재정지원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협력적 관리체계를 통해 운영의 책무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모델이다. 사립대학이 고유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보장받는 한편, 일정 수준의 공공 기준을 충족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정부는 재정지원을 조건으로 이사의 투명한 선임, 공공성을 반영한 학사운영, 회계의 투명성 확보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단순한 재정지원이 아니라, 대학이 공적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 일본, 대만, 프랑스 등도 공영형 또는 준공립형 대학체제를 통해 사립대학의 공공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해 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립대학들이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는데. 무엇보다 재정 기반의 취약성이 심각하다. 등록금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 속에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정원 미달 대학들이 늘고, 이에 따라 교육환경 악화, 교육의 질 저하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일부 사학재단의 전횡 문제도 여전하다. 교직원과 학생은 의사결정에서 배제된 채, 대학이 마치 재단 일가의 사적 소유물처럼 운영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대학의 공적 위상과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고, 교육기관으로서의 존재 이유마저 의심케 한다. 따라서 지금의 사립대학 체제를 그대로 둔다면, 대학의 질적 하락뿐 아니라 고등교육이 지닌 공동체적 가치도 점차 훼손될 수 있다.
공영형 사립대학은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다. 정부의 재정지원과 공적 기준을 통해 대학 운영의 공공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고, 재단의 전횡을 방지하며, 회계 투명성과 민주적 거버넌스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곧 대학의 신뢰 회복과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재정난에 처한 지방 사립대학에 공영형 전환은 실질적인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전환을 원하지 않는 대학도 있을 수 있으며, 이들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자율형 대학의 형태가 될 수 있겠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대학체제를 국공립대, 공영형 사립대, 자율형 사립대의 3원 체제로 재편하고, 이를 통해 고등교육의 균형과 다양성,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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