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지키지 못할 약속했다’ 평가원 내부도 비판
쉬운 수능 강조 하려다 정부 공신력만 추락

수능시험 채점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9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김경성 채점위원장은 수능이 당초 약속대로 쉽게 출제됐으며 각 영역별 등급도 표준치에 근접하는 등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날 언론의 관심은 만점자 1%에 모아졌다. 성태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평균점수 만점자 비율 등 여러 정황을 분석해 적정 난이도 수준으로 1%가 제시됐다”며 “내년에도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점자 1%는 지키지 못했지만 쉬운 수능 약속은 지켰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언론은 평가원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학생과 학부모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특히 편차가 심했던 언어와 외국어에 화살이 집중됐다.

당황한 평가원은 학생들이 EBS에서 출제된 문항을 문제만 보고 답을 찍는 바람에 만점자 비율이 떨어졌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놨다. 성 원장은 “같은 지문이라도 답이 다를 수 있는데 학생들이 문제만 보고 그냥 답을 써내는 경우가 많아 언어에서 만점자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잘못이 크다는 해명은 그러나 기자 브리핑에 참석한 어느 누구로 부터도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당초 모의고사 때는 빠져있던 특성화고 학생들과 재수생들의 변수가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결국 표본조사 때 간과했던 변수의 영향으로 만점자 1%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해명과는 별개로 평가원 내부에서는 정부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덜컥하는 바람에 평가원만 덤터기를 쓰게 됐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연구진들 중에는 각 영역별로 만점자 1%를 만들에 낸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속내를 털어 놓기도 한다.

EBS교재에서 70%를 출제해야 하는 조건 이외에도 기출문제를 피하고 등급간 블랭크 없이 난이도를 조절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 만점자 1%까지는 아직 여력이 없다는 항변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평가원으로서는 만점자 1%라는 공약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신뢰도에 또 한 번 금이가는 쓴맛을 봐야만 했다.

외국어 영역의 경우에는 지난번 모의고사에서 만점자 비율이 1% 미만으로나오자 평가원이 너무 쉽게 출제하면서 만점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9월 모의고사에서 외국어 만점자는 0.32%. 그러나 이전 수능에서는 2.67%로 나와 난이도 조절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다.

평가원의 고민은 그러나 오는 2014학년도부터는 추억속으로 사리질 것으로 보인다. 수능이 난이도에 따라 A, B형으로 출제돼 만점자 1%와 같은 숫자놀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