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훈 기자] 서울시내 일부 혁신학교에서 평균 1억 4천여만 원에 이르는 학교운영지원비가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들 생일 떡값으로 1천만 원을 지출하는가 하면 학교 텃밭 조성에 3천만 원, 교직원체육복 구입비로 7백여만 원 등 단발성 선심 예산이 물 쓰듯 집행되고 있다.
예산 씀씀이만 보면 수업 질 개선 등 교육혁신을 통해 공교육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혁신학교 설립 취지가 무색한 실정이다.
특히 대다수 일반 학교들이 극심한 재정난에 에어컨조차 제대로 틀지 못하는 여건에 비춰보면 일부 혁신학교의 재정 운용 실태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 고비용 공짜 체험학습 등 단발성 선심 예산 집행
22일 본지가 서울지역 혁신학교 수 곳을 대상으로 학교알리미 등 각종 정보공시 자료를 통해 2012년도 학교운영비 예산 운용 내역을 조사한 결과, 교육과정이나 교수 학습 개선보다는 ▲고비용 공짜 체험학습 ▲입학식- 졸업식- 축제-체육대회 경비지원 ▲학생 및 학부모 동아리 간식비 지원 ▲교사 연수 복지비 등에 집중됐다.
서울 A 초등학교는 생일을 맞은 학생에게 일일이 떡 케이크를 만들어 주는 행사를 매달 개최하면서 여기에 1천여만 원을 쏟아 부었다. 학생들 만족도는 높았지만 일반 학교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전교생이 1천여 명인 이 학교는 학생들 체험학습에도 4천 4백여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B 중학교는 체육대회 때 5백여만 원 상당의 학용품을 구입, 학생들에게 상품으로 나눠줬다. 일반학교들이 30~50만 원 정도를 책정해 사용하고 있는데 비하면 격차는 무려 10배에 이른다. 이처럼 입학식 졸업식, 축제 등 학교 행사 때 각종 물품을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사례는 혁신학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체육대회 행사비 일반학교에 10배 넘는 경우 많아
또 C 초등학교는 6학년 전환기 프로그램 운영 명목으로 전체 학생들에게 영화 관람비로 수백만 원을 썼는가 하면 D 초등학교는 학부모 자율동아리 운영비에 1천5백만 원을 책정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 모두 혁신 교육을 추구하는 교육 목적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것들이어서 예산 집행이 적절했느냐 하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혁신학교 교사들은 연수비 지원도 풍족했다. 예를 들어 E 중학교는 지난해 교사연수비로 2천만 원을 썼으며 F 고등학교는 2천6백만 원을 지출했다. 이뿐 아니다. G고등학교는 교사협의회비로 910만 원을, H 중학교는 740만 원을 각각 썼다.
I 초등학교는, 혁신체육대회 교직원체육복 구입에 7백만 원, 체육대회 준비물 구입비 6백만 원, 체육대회 상품비 3백만 원, 체육대회 평가회비 175만 원 등 체육대회 한번 치르는데 줄잡아 1천 7백여만 원을 지출했다.
반면, 상당수 혁신학교는 학교운영지원비에서 도서구입비와 학습자료구입 지출에는 인색했다. 서울 J초등학교와 K 중학교는 예산편성 때 이들 경비를 단 한 푼 배정하지 않아 결산 세출항목에 0원으로 기록돼 있다.
혁신학교 예산 집행이 이처럼 방만한 것은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운영비 지침이 없어서다. 학교당 평균 1억 4천만 원 상당의 지원금을 자유롭게 집행할 수 있도록 맡겨 놓았으나 교사들로서는 창의적 프로그램 개발에 부담이 큰 것이 사실. 그러다 보니 기존 학교에서 운영했던 교육 프로그램에 돈만 더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작년에 혁신학교에 근무했던 한 교사는 “체험활동비로 2천여만 원이 책정되는 바람에 이를 소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학교에서는 예산 1~2천만 원 따오는 것도 힘든 실정임을 감안 하면 지나친 특혜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 지나친 예산 지원 오히려 혁신교육 발목 잡는 毒 될 수도
혁신학교에 많은 재원이 투입되다 보니 오히려 교사들의 창의적 교육활동을 제약하는 역기능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어진 예산을 모두 써야 하는 부담으로 행정업무가 늘어나 교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전직 혁신학교 교장은 “1억 4천여만 원 이란 예산 지원이 교육 혁신을 추구하는 교사들에게는 毒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교육전문가들은 “일반 학교에 돌아갈 예산을 혁신학교에 몰아주는 꼴이 되는 바람에 교육현장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초래되고 있다”며 “학교운영지원비 책정 조정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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