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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곽노현 교육감이 당한 것 같다.

무상급식, 학업성취도 평가, 체벌금지, 교장공모제 등 굵직하고 민감한 현안들을 절묘하게 헤쳐 나가는 영리함이 돋보인 그였지만 아직은 노회한 관료들이 한수 위였다.

곽 교육감이 심혈을 기울인 9월 정기인사는 그의 바람대로 평판이 썩 나쁘지 않다.

5년 이상 된 고위 전문직들은 낙후된 학교에 배치하는 ‘하방’은 나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직 쇄신의 동력도 얻고 한방에 구체제를 뒤엎는 일거양득의 효과도 거뒀다.

여성 우대 차원에서 초중등과장과 주요 보직에 여성을 앉히고 전문계고 출신이나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교장을 교육장에 임명하는 시도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화려하게 등장한  곽노현 1기 인사는 그러나 면면을 읽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딱히 개혁적이라고 말하기도, 철저한 능력 본위라고 평가하기도, 그렇다고 화합형 인사라고 추켜세우기도 어려운 탓이다.

세간의 평 또한 뒤죽박죽이다. 대표적 진보진영 인사인 한 교육의원은 “실망을 감출수 없다”고 촌평한 반면 보수의 극단에 서있는 모 단체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며 만족스런 논평을 내놨다.

곽 교육감은 변방으로 떠난 전문직들이 자신의 취지에 100% 이해했다고 자신했지만 그들의 속내는 울며 겨자먹기 였을 것이다.

떠나는 그들을 더욱 부글거리게 만든 것은 ‘뭔가에 말려들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9월 전문직 인사를 앞두고 시교육청 안팎의 특정 인사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 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교육계는 그들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그리고 지금 그 소문은 사실처럼 회자된다.

공정택 전 교육감 최측근들이 포함된 '4인방'이 표적이 되고있다.

이들은 곽 교육감에게 조직쇄신과 여성우대, 현장 발탁 등과 같은 화려한 명분을 쥐어줬다.

대신 아직은 서울 물정에 어두운 교육감의 빈틈을 비집고 후임 인선에서 ‘실속’을 차렸다는 소문이다. 명분과 실리를 나눠가진 그들만의 윈-윈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뇌물수수혐의로 징계를 받은 인사가 버젓이 자리를 지키는가 하면 교장공모제 100%확대에 ‘불편한 소리’를 했던 전문직은 ‘괘씸죄’로 6개월 만에 쫒겨나는 경우도 발생했다.

각종 교육기관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손오공 전문직’도 눈에 띠고 학연 지연 배제한다는 명분으로 문외한을 꽂아 넣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솜씨도 보인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이번 인사에서 교육감이 추구하는 철학을 명쾌하게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혹 그가 어느 영화배우의 말처럼 그저 차려진 밥상만을 맛있게 먹었던 것은 아닐까. 노회에 휘둘리지 않는 교육감의 큰 목소리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