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의 틀은 일종의 고진감래형 교육이다. 공부 끝에 행복이 있으므로, 행복하기 위해선 힘이 들더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 곧 공부인 셈이다. 거꾸로 말하면, 초, 중, 고 시절에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행복해 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긴 역사 속에서 이런 고진감래형 교육이 우리 삶 속에 굳건히 자리 잡아 왔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성적을 얻고, 성적이 좋아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 출세와 성공과 부를 이룰 수 있고, 출세, 성공 그리고 돈이 많으면, 당연히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의식이 바로 한국인에 고유한 교육열의 본체다. ‘고생 끝에 낙이 오니, 힘들더라도 참고 공부에 전념하라.’는 고집스런 자녀양육의 철학이 여기서 발생하며, 자녀의 행복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발판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도록 돕는 것이란 신앙과도 같은 믿음도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이런 교육의 틀 속에서는 ‘공부와 성적’이 행복의 필수조건이 되므로,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행복은 당분간 유예(猶豫)된다. 즉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현재의 행복은 당분간 미루어두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에게도 3-5개의 학원에 다니도록 요구하고 있고, 대입 수험생들에게는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4當5落)의 가혹한 시간관리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어린자녀를 조기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이역만리 땅에 보내서 가족 모두가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 집도 많다. 공부를 위해서 학생 당사자의 행복을 유예할 뿐만이 아니라, 온 가족의 행복도 기꺼이 미루어 두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교육의 리얼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고진감래형 교육의 기본 가정이 크게 도전받고 있다. 첫째 ‘공부 잘해서 출세하고 성공하고 돈이 많으면 행복해진다’라는 가정에 대한 회의(懷疑)다. 경제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긍정심리학은 출세와 성공과 돈이 행복의 필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많은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두 번째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전념할수록 공부의 성과가 크다.’라는 가정에 대한 회의이다. 다양한 사회과학(심리학, 사회학, 경영학, 교육학)들은 ‘행복할 때 오히려 학습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생산성이 더 증가한다.’는 상반된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고진감래형 교육에 대한 이런 도전을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의 흐름이 바로 행복교육이다. 행복교육은 두 가지 지향점을 갖는다. 첫째는 ‘행복할 때 공부도 잘 되고, 성장과 발달의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긴장, 불안, 초조, 강박적 집념이 학습성과를 올릴 것이라는 믿음과 달리, 학생들은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할 때, 기억도 잘 되고, 추리력과 창의성도 증가하고, 문제도 잘 풀고, 주의 집중도 잘 되어 오히려 학습 성과가 커진다.
따라서,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행복은 유예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게 하려면, 그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그런 행복감을 증진시켜 주어야 한다. 이것이 행복교육의 중요한 지향점 중의 하나이다.
행복교육의 두 번째 지향점은 ‘행복은 출세와 성공과 부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습관이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즉 행복은 출세와 성공과 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통해서 습관을 들이기 나름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출세하고 성공하고 부자인 사람들만 행복하다면, 이 세상은 불행한 사람들로만 가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극소수를 제외한 이 세상 대다수 사람들은 출세하고 성공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세와 성공과 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도 얼마든지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은 소수다. 이 소수에 끼지 못한 학생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가? 많은 연구에 의하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가 평생에 걸친 행복감에는 큰 영향을 못미친다. 하버드 대학생을 대상으로 추진된 ‘70년 행복 종단연구’(Aging Well, G. Vaillant, 2011)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긍정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행복은 개인이 어릴 적부터 습득한 긍정적 습관(미소, 감사, 친절, 양보, 희생, 용서 등)이나 긍정적 정서(열정, 호기심, 심리적 대응능력, 희망, 비전, 회복 탄력성 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행복교육은 바로 이 두 가지 이론적 가정을 토대로, 현재의 고진감래형 교육의 틀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면 행복교육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행복교육은 두가지 목표를 갖는다. 첫째 목표는 가정과 학교에서 학생들을 행복하게 해주자(Learning in Happiness)는 것이다. 그러면 학습도 성장도 성격도 대인관계도 아주 좋아질 것이다. 둘째 목표는 가정과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과 습관을 가르치자(Competence to Happiness)는 것이다. 그간에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을 중심으로 한 교과학습에만 치중해 왔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긍정적 정서와 습관, 가치롭고 의미있는 활동에의 몰입 습관, 긍정적 대인관계, 존재의 긍정적 의미감,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의 자아실현 등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가르치자는 것이다.
우리 교육청의 2013년도 비전은 ‘모든 학생의 꿈과 끼를 함께 키우는 행복교육’ 이다. 행복교육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모든 학생과 선생님, 모든 학부모와 학교가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 행복교육을 합심해서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속에서 학생들은 행복하게 공부하면서 미래의 행복을 위한 능력과 습관을 기르고, 선생님들도 자긍심과 사명감과 행복감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부모와 시민들은 교육공동체의 울타리로서의 역할을 행복하게 참여하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서울형 행복교육을 위해 서울시 교육청은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첫째, 학생들이 행복하고 학부모들이 신뢰하는 학교로서의 기본 가치를 회복하고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하여 ‘교육의 기본을 회복하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선생님들이 행복감을 느끼며 학생들을 소신껏 가르칠 수 있도록 ‘선생님의 긍지와 보람을 찾아드리겠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학생들을 보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교육의 혜택 속에서 꿈과 끼를 펼치며 자랄 수 있도록 ‘그늘진 곳의 아이들도 꼼꼼히 챙기겠다’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서울시민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언제나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시민 모두를 위한 학습공동체 서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리 서울시 교육청은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한 행복교육’에 큰 비중을 둘 것인데, 학생을 위해서는 중1진로탐색집중학년제, 중학교와 일반고등학교의 점프업(Jump up) 및 서울 학습공동체 네트워크를, 선생님들을 위해서는 ‘선생님들의 긍지와 보람을 찾아드리는 선생님 점프업’ 사업을 중요한 정책으로 삼아 열심히 추진하게 될 것이다.
이 정책들이 바로 행복한 서울교육의 구현을 위한 핵심 고리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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