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인곡 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최근 연합뉴스는 “대학서 자취 감추는 인문사회학 … 4년간 서울서만 330개 통합”이란 제목의 기사를 다루었다. 이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2022년부터 올해까지 서울 소재 대학에서 통폐합된 인문•사회 계열 학과는 총 330개였다. 2022년 87개, 2023년 53개, 2024년 90개, 2025년 100개의 인문•사회 계열 학과가 통폐합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수험생들의 이공계 선호 현상에 따른 것과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 등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설명이 뒤따르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단순히 한두 학과(특히 언어학, 경영학)의 축소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고등교육의 토대인 학문생태계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미래 경쟁력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위기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지역 거점 국립대 중의 하나인 ○○대학교는 독문과, 불문과, 노어과 등 소위 '소수어 학과'의 신입생 모집 중단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학계와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백상현 교수는 “언어는 단지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 역사, 철학을 함께 배우는 것”이라며, “이러한 전공 폐지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국제 감수성을 스스로 갉아먹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단기적인 취업률이나 산업 수요만을 기준으로 전공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 전환 등 기술 중심의 변화 속에서도 인문•사회학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인간 중심의 사고, 윤리적 판단,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는 기술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미래 직업 보고서 2023’에서 창의성, 비판적 사고, 협업 능력 등을 미래 핵심 역량으로 제시했다. 이는 전형적인 인문•사회 교육의 산물이다.
선진국 일본은 이미 인문학 경시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었다. 2015년, 일본 정부는 국립대 인문•사회 계열 축소 방침을 발표하며 대학의 실용 학문 중심 개편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후 학계와 산업계 모두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2017년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오히려 "인문•사회학이야말로 산업계의 창의성과 윤리성을 담보하는 기반"이라며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인문•사회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게 되었다.
인문•사회학은 단지 고전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사회, 권력과 윤리, 언어와 문화, 역사와 미래를 성찰하는 학문이다. 이런 학문이 대학에서 사라질 때, 우리는 단지 전공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공적 사고를 기를 기회를 잃는다. 특히 민주주의, 인권, 지속가능성, 사회통합 같은 오늘날의 중요한 가치들은 인문•사회학의 성찰을 통해 다듬어져 왔다.
경희대학교 송재룡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키울 수 없다. 기술은 수단일 뿐,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쓸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며, 그 판단은 인문•사회학의 몫”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 사회가 미래를 준비하는 길은 단순한 산업기술 인력 양성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인문•사회학을 함께 키워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대학은 지식의 보고이자, 공공적 사유의 장이다. 당장의 수요와 숫자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지 ‘학과’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는 ‘지성의 기반’이다.
대학은 보다 거시적인 학문 정책과 최고 지성의 전당답게 학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제 정부는 학문생태계 유지에 지원을 확대하고 대학은 기초교양 강화를 포함한 자구책 마련으로 균형 잡힌 인재 양성과 국가 소프트파워가 위축되지 않도록 깊이 성찰하고 신속한 재결단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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