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가 되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노벨상 후보자들의 이름이 거명되며 국가마다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선진국 일본은 지금까지 총 25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금년에는 2명의 수상자를 한꺼번에 추가했다. 공산국가인 중국조차 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하지만 우리는 제로 상태이다. 더욱 경계할 일은 최근에는 유력한 후보자조차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현재,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IT와 반도체 산업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나라다. 하지만 과학의 노벨상, 그중에서도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이라는 ‘노벨과학상’ 부문에서는 아직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기술 강국임에도 기초과학의 영역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것에 안타까움을 넘어 국가적 위기를 느끼게 된다. 이는 단순히 과학자의 재능 부족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뿌리는 깊숙이 한국의 교육 구조와 문화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 창의성의 무덤
한국의 교육은 오랫동안 5지 선다형 ‘정답 찾기’에 매달려 왔다. 수능 중심의 입시 경쟁 체제는 학생들이 질문보다는 해답을 외우는 데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수능 만점자들조차도 “고교 시절은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기계적으로 능숙하게 푸는 것에 길들여져 왔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찍이 OECD는 보고서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에서 높은 성취를 보이지만, 창의적 문제 해결력과 자기주도 학습 능력은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을 반복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마리오 몰리나는 “진짜 과학자는 왜 그런지,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그러한 질문을 장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틀린 답’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단기성과 중심의 연구 환경
한국의 연구 문화도 교육의 영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논문 수나 단기 실적 위주의 평가가 만연해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과학기술 연구자 중 75% 이상이 ‘연구 방향이 정부 과제나 평가 기준에 의해 좌우된다.’고 답했다. 이는 장기적이고 실패 가능성이 큰 기초연구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응용연구나 산업화 중심의 연구에 자원이 쏠리게 만드는 이유라 할 것이다.
반면,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보통 수십 년의 실패와 탐색 끝에 탄생한다. 일례로 일본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오무라 사토시는 20년 넘게 세균과 기생충을 연구한 끝에 항기생충제 '이버멕틴'을 개발했다. 그의 연구는 기업이 아닌 국립대학과 공공 연구소에서 이뤄졌고, 연구 자율성과 실패에 대한 관용이 뒷받침되었다.
교사의 역할과 교육 내용의 전환 필요성
현장 교육자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브라이언 조셉슨은 고등학교 시절 물리 교사의 자유로운 수업 방식이 자신의 흥미를 일깨웠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한국의 교사들은 촘촘한 교육과정과 평가 기준 속에 자유로운 실험이나 토론 수업을 시도하기 어려운 고질적인 구조에 오랫동안 놓여 있다. 이 시대 교사들의 멘토라 불리는 교육학자 조벽 교수는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사고를 자극하는 안내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은 분명하다. 노벨상 수상자와 그를 키운 교육의 공통점은 ‘질문을 허용하는 문화’에 있다. 세계 인구 0.2%에 불과하나 노벨상 수상자의 20% 이상을 배출한 유대인의 교육은 ‘하브루타’라 불리는 질문하고 토의, 토론하는 교육 방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질문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은 매우 시급하고 절대적이다. 왜냐면 과학은 지식의 축적이 아닌, 상상력과 창의성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르는 가장 확실한 비법은 바로 교육 방식에 달려 있음을 깊이 깨달아 이를 과감하게 혁신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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