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전재학
“우리 학교는 왜 현장체험이 없어요?” “선생님, 현장체험학습 안 가요?” 엇비슷한 질문이지만 각 학교별로 신학기가 시작된 지 불과 얼마 안 되어 2025학년도 학사일정표를 손에 쥔 학생들의 궁금증이 폭발하고 있다. 그만큼 현장체험학습이나 수련회 등은 학생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는 ‘학교 밖 교육활동’의 진수라 할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은 답답한 교실과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난 야외활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어른들이 학창시절을 회고할 때, 압도적으로 설렘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라는 것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각 학교에서의 현장체험학습에 제동이 걸리고 추진 동력을 잃은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이는 근래 현장체험학습에서의 학생 인명 사고로 인솔교사에게 전적으로 법적 책임을 물어 유죄 판결에 의한 후유증이다. 변변한 법적 안전장치조차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불러온 그 사건은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수십 명의 학생을 책임지고 인솔하는 교사에게 가차 없이 책임을 지우는 것은 현실에 무지몽매한 측면이 있다. 이에 각종 교원단체 및 각 시도 교육감 협의회는 합당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교사들의 기피와 포기라는 방어권 발동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교육은 체험을 통한 경험으로의 승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학교 교육이 교과서 속의 지식 탐구로만 전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체험(體驗)과 경험(經驗)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우리말 사전은 체험을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이라 정의하고, 경험은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또는 “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깨닫게 되는 내용을 가리키는 철학 용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어로는 똑같이 “experience”라 한다. 실제 우리는 체험이나 경험을 거의 동일하게 의미상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마케팅의 입장에서는 이를 보다 쉽게 구분하여 체험은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 경험은 “사람들에게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제는 정보제공을 통한 이해(理解)는 사실과 정보의 전달에 기반을 두는 이성(理性)의 영역이지만, 정서를 불러일으켜 공유하는 것은 감정(感情)의 영역이란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선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선 감정이 이성을 이긴다고 피력했다. 그래서 인간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에토스(ethos)가 이성에 의해 논리적 설득을 감행하는 로고스(logos)보다 우월함을 주장했다. 이는 교육적 효과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여행을 언급할 때 ‘경험’이라 하지 ‘체험’이라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보통의 여행이 경험에 가까운 이유는 이것이 우리에게 정보가 아닌 정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거부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꿈꾸며 살아간다. 여행이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에 그친다면 얼마든지 책이나 영상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은 단순한 지식의 폭을 넓혀주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바로 정서적 공유인 공감을 나눌 수 있다. 여행이 낯선 풍경을 체험하는 것에 그치면 우리는 그것을 여행이 아닌 관광이라 말한다.
이제 우리의 교육은 어찌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단지 체험의 기억만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승화된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의 역량을 길러줄 것인가?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은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식과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체험이라면 경험은 유⋅무형의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통해 학생들에게 특정한 정서와 감정을 통한 관계를 형성시킨다. 학생들에겐 단순한 현장체험이 아닌 경험으로 서로를 연결하는 정서적 관계를 맺도록 하고 개인의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어야 한다. 결국 교육은 체험을 통해 경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제 ‘1g의 경험이 1000kg의 이론보다 낫다’는 존 듀이의 실용주의적 ‘삶의 힘’을 기르는 교육관을 학생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고 시대에 걸 맞는 한국적 교육의 지향점으로 삼도록 법적, 제도적 현장체험학습의 강화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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