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인곡 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꼽히던 고(故) 이어령(1934~2022) 교수는 문화 인류학의 전문적 식견으로 널리 알려졌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일본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크게 공감을 얻었다. 그의 생전 어록 중에는 한국인의 특성을 지적한 것도 많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가르치기 좋아하는 한국인’이다. 이는 인간관계와 교육학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본고는 요즘처럼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에 한국인의 이런 특성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언을 하고자 한다.
오늘날 학교는 학부모와 교사 간의 심리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물론 일부 학부모에 한정된다고 하나 ‘내 새끼 지상주의’는 일상에서 교사들과 심한 충돌을 유발하고 있다. 특히 ‘교사 학대’라 불릴 만큼의 ‘아동 학대 신고’는 교육문제로 비화되어 ‘학교의 사법화’가 만연해 교사의 교육활동에 심한 위축을 초래하고 학교 운영조차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마치 ‘교사 때리기’가 학부모의 최애(最愛) 스포츠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꼴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이 그처럼 악화된 이유는 그밖에도 많지만 그중의 하나가 교사 속에 내재된 한국인의 특성이 학부모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나타나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필자는 중고등학교의 관리자(교감, 교장) 시절에 선생님들이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교사가 학생을 생활지도 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지도 방식에 학부모가 제동을 걸고 민원을 제기하며 심지어 학교를 찾아와 시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교사와 학부모가 한 자리에서 상호 간의 입장을 설명하는 가운데 중개자의 입장에서 확연하게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교사가 상황 설명을 넘어 학부모를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을 배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 교사에게 눈치를 주고 주의를 환기시키려 했지만 이미 체질화된 교사의 어투와 몸짓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맹자는 ‘역자이교지(易子而敎之)’를 교육 철학으로 제시했다. 이는 자식을 서로 바꿔 가르친다는 원리다. 맹자는 부모 자식 사이는 애초부터 잘못을 지적하거나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핏줄로 이어진 인연이기에 강요하거나 타일러서 상처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현대에 와서도 비싼 수업료를 주고 선생에게 자식을 맡기고, 강사료를 내고 배우자의 운전연수를 부탁하는 이유가 가르치는 과정 속에서 서로 간의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우리의 일상에서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려 하다가 부모 자식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인연을 끊는 최악의 경우도 많다. 그것이 어찌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만 한정되겠는가? 배우자도, 형제도, 친구도, 학부모도 잘못을 직접 지적하고 타이르고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꼭 가르쳐야 할 게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인연을 오래, 상호 간에 상처주지 않고 견지하는 방법이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치료약이 없다지 않는가?
공자도 직접 자식을 가르치지 않았고 “부모 자식 사이에는 본래부터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다(父子之間不責善)”고 말했다. 가까운 사이에 옳고 그른 것을 따지다 보면 서로 갈등이 생겨 마음이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지면 부자지간에도 이보다 불상(不祥)한 것이 없다. 서두의 이어령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인들은 흔히들 말하는 ‘선생병(先生病)’을 가지고 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고, 훈계하는 고질병 말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옳고, 다른 사람에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쉽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선생 노릇을 하려다가 결국 상처를 줘 멀어지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함께 가야 할 사람이라면 면전에 대고 직접 지적하지 말자.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우회해 스스로 깨닫게 하든, 돌려서 곡진하게 설득하든,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든 인간관계를 해치고 악한 감정을 초래하는 것은 금기(taboo)다. 신학년도를 맞이하면서 학부모를 만날 때마다 가르치려는 교사에게는 상처받는 학부모가 많고 이는 돌이킬 수 없이 관계를 해친다는 고전(古典)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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