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교사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 알려진 교원의 직무는 편의상 넓게 수업과 학습지도, 생활지도, 특별활동, 학급운영, 행정업무 등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영역은 더 세부적으로 하지만 임의적으로 규정돼 있다. 이렇게 나열된 교사의 직무는 과연 교육의 주체인 교사에게 주어진 합당하고 합법적인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단연코 “No”이다. 그동안 우리는 매우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직무로 교사를 옥죄며 수많은 갈등과 번아웃을 키워 왔다.
우리의 교원 직무에 대한 규정은 초⋅중등교육법에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④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두루뭉술하게 명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그동안 법적 근거도 없이, 관례와 상급기관의 지시에 따라 하달된 업무를 관습적으로 수행해 왔다. 이는 교사 본연의 직무가 아닌 것들이 은근슬쩍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교사들은 과도한 잡무를 처리하느라 진정한 교육활동에 전념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교사는 국가와 교육당국이 시키는 교육 관련 잡다한 업무에 그저 복종과 순종으로 일관해 왔다.
현재 우리 교육은 ‘교권추락’ ‘교권침해’ 논란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대적으로 매우 강해진 학부모의 힘은 각종 악성민원과 갑질,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소송 등으로 교권은 만신창이가 되고 ‘사법화’ 대상으로 추락한 상태다. 이는 교원의 직무가 분명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기에 이제는 애매모호한 성격의 교원의 직무를 보다 분명하게 규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 ‘정당한 교육활동’의 범위와 기준이 확립되고 이를 넘어서는 일체 행위를 ‘교육활동 침해’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학교 현장에서는 상급기관이나 유관기관에서 내려온 공문이 업무성격이 분명하지 않아 자체 내에서 잡음과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교사와 행정 직원 간에 업무를 놓고 서로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줄다리기를 하며 결국 상호의 노조를 내세워 교직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심지어 한 울타리 안에서 척지고 살아가는 관계 악화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나 지난 3년여의 장기간에 걸친 코로나19의 위기 시에는 감염병 관련 신생 업무로 인해 교직원 사이에 극도의 긴장과 불안이 발생하는 이중고로 학교 현장은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제 교직원의 직무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성이 날로 증대하고 있다. 이로써 교육활동 중 일어난 각종 사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수 있다. 최근 개정된 초⋅중등 교육법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은 아동학대범죄로 보지 아니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당한 교육활동’의 법률적 정의가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교사의 행위가 아동학대 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극히 어려울 뿐이다. 이는 형사상, 민사상 소송의 지난한 과정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어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의 관계만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심지어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아 우리 교육의 심각한 문제로 비화되어 왔다.
교사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각종 업무가 법령과 교육 목적에 부합한 방식으로 확고하게 정해져야 ‘정당한 교육활동’이 실현될 수 있다. 이로써 교사의 교육활동에 부당한 개입이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이며, 직무수행 결과에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 또한 교사가 직무 수행에 학생⋅학부모의 존중과 협력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교사 본연의 교육활동에 학교 관리자나 교육 당국, 학생이나 학부모의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교사가 교육 전문가로 합당한 대우를 받는 기초 조건이다.
교사의 76%가 번아웃을 경험한 바가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이제 교원의 직무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만이 교사의 업무태만이나 주의소홀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는 ‘잡무’라는 애매모호한 교사의 업무가 주는 각종 논란을 함께 잠재울 수 있다. 이제는 교사가 교육과 무관한 업무를 하느라 본업을 뒷전에 밀어놓고, 작은 실수만 저질러도 교직을 떠나야 하는 불행을 국가는 예방해야 한다. 여기에 교육선진국들의 교사의 직무에 대한 단순명쾌한 규정을 참고삼아 보다 선진화된 한국식 교원의 직무를 하루빨리 정립(定立)해 교사의 사기와 사도를 동시에 고양(高揚)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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