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은 한마디로 벤치마킹의 귀재였다. 대량생산 시대, 산업화의 비결로 성장을 능가할만한 비책으로는 다른 무엇과 견주기 어렵다. 여기에는 눈썰미와 손끝의 솜씨가 출중하고 인내와 성실한 자세만 있으면 가능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경우, 한때 경제 성장을 위한 가성비가 높은 방책으로, 지구촌 최고 수준의 기술 보유국들에서 사물과 제도를 눈으로 보고 익혀 이를 자국의 산업과 제품에 도입하는 것이 매우 탁월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성장을 위한 벤치마킹 방식은 대한민국을 단연 돋보이게 이끌었다. 대한민국이 성장의 길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벤치마킹한 것은 특유의 부지런하고 빨리빨리 정신과 명석한 두뇌라는 국민 기질에 힙 입어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하지만 이는 디지털 문명 시대에 성장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국가가 물질적 성장을 넘어 의식과 영혼까지 흠뻑 적시기에는 창의성과 상상력의 발현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과 AI 시대에 적합한 독특한 개별성과 창의력을 갖춘 성숙이 요구된다. 우리의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심야 11시까지 학교 건물을 대낮처럼 밝힌 근면과 성실에 힘입은 바 크다. 이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성장 주도의 인재 양성의 첩경이었다. 교육에의 시간 투자만큼 결과도 가져왔다. 부존자원 하나 변변치 않은 국가가 살 길은 교육에의 열정과 투자만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런 추격사회 모델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맞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이는 우리가 더 이상의 선진국가로 나가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인재육성의 책임을 떠안고 있는 우리 교육 시스템이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숙한 민주국가로 가기 위해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학교에서의 정치교육을 구현해야 한다. 정치는 사회 모든 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풍토상 듣기에 따라서는 성급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해 논쟁의 여지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우리의 정치의식은 아직도 미성숙한 단계에서 사회적 자산인 신뢰와 통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여기엔 정치인과 교육자 등 모두의 책임이 크다.
과거 우리는 교실에서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 낸 적이 없다. 그 반대로 한국적인 ‘시험형 인간’ 교육을 잘 받은 엘리트들은 오만하고 미성숙한 잠재적 파시스트의 성향이 농후하다. 이는 한국이 위대한 민주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출세와 성공의 교육가치가 낳은 이기적이고 편협한 기득권 사수가 아닌 인류의 고통과 억압에 연대하는 높은 정치의식을 가진 성숙한 민주시민을 육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서유럽과 북유럽의 복지국가이자 교육선진국들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지구의 기후 위기를 예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례의 대표적인 경우가 그레타 툰베리라는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이다. 그녀는 15세의 나이에 학교 대신 의회로 가서 정치 지도자들이 세계의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는 행동을 요구했다. 반면에 우리의 청소년들에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대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이로써 개인적인 출세와 성공을 위한 꽃길을 걷는 것이다. 어떻게 비슷한 또래의 의식의 차이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우리 학생들도 이제는 성숙한 세계시민이자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학교의 정치화를 우려한다면 이는 선진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높은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선진국의 청소년들이 정치교육을 통해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을 배우는데 왜 한국의 청소년들은 정치교육을 받으면 안 되고 또 위험하다는 것인가?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들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최근에 한국의 청소년들은 만 18세의 정치적 시민권을 얻었으며 만 16세에 정당에 가입할 권리를 얻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이제는 지식의 양적 성장이 아닌 세계적인 표준규범을 익히고 도덕성과 양심, 윤리적 측면에서 학교에서부터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교육이 ‘성장’ 위주에서 ‘성숙’으로 가기 위해 안고 있는 필수 과업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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