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청산은 나를 보고/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노여움도 내려놓고/아쉬움도 내려놓고/물같이 바람같이/살다가 가라 하네//” 이는 고려 말 공민왕의 스승인 나옹선사(1326~1376)가 쓴 한시인 청산가(靑山歌)이다. 그는 중국 사찰에서 주지승으로 10년을 수도하고 인도, 중국이 인정하는 큰 스님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의 스승이다. 그렇다면 왜 이 시대에 나옹스님을 소환하는가? 불교에서는 인생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무지에 있다고 설파(說破) 한다. 우리 중생(국민)들은 시대의 고통을 제대로 알고 이를 극복하는 삶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이 시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삶이 고통과 번뇌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낀다면 이는 개인의 민감한 기질과 일종의 진보적인 사상으로 인한 편향성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다. 이는 교육계 원로의 한 사람으로 이 억압과 불공정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결코 마음의 안녕과 평화를 추스르기가 힘들다는 애절한 호소이기도 하다. 나옹선사처럼 수련을 완성한 수도자가 되어 그저 노여움도 아쉬움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기엔 교육자로서 느끼는 이 시대의 삶의 비애와 고통이 큰 까닭이다.
누군가 삶의 지혜로 지적한 대로 ‘때로는 한쪽 눈을 감고, 때로는 한쪽 귀를 막는’ 인고의 참을성이 필요한 시대다. 그동안 이 나라가 ‘배워서 남 주자’고 교육하여 배출한 엘리트들이 참으로 자신만의 출세를 위해, 그리고 지극히 집단 이기적이며 탐욕스런 권력욕에 빠져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소임을 망각하고 벌이는 행태는 참기 어렵다. 한때 우리 교육 체제에서 공부의 달인이라 불렸을 인재들이 벌이는 무도, 무책임, 무능의 행태는 차라리 회초리를 들어 종아리를 쳐서라도 바로 잡고 싶은 교육자의 책임을 느낀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배출한 인재들은 실패한 것인가?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은 이 시대 엘리트들을 두고 한 것인가?
현재 우리의 삶이 위축되고 갈수록 힘겨운 것은 이 나라에 삶의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주고 국민통합으로 이끄는 진정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진보, 보수의 편향성은 대화와 소통,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국민의 안전과 평화, 생명을 지켜야 할 정치 소임을 헌신짝 버리듯이 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 하에서 그토록 갈구하며 되찾았던 언론과 표현의 자유마저 흔들리고 있다. 그뿐이랴. 법치주의에 따른 법 집행의 정의와 공정, 상식을 망각하고 그저 내 편, 네 편에 따라 수사와 기소가 차별화되니 사법체제에서 범법자로 판결된 사람들이 오히려 국민의 선택을 받고 회생하는 정치판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이 나라가 용케도 버텨왔던 경제는 점차 뒷걸음질 치고 시민의 삶은 행복과 멀어지며 날로 팍팍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어떤가? 갈팡질팡 정책의 혼선이 빚어지고 교육개혁의 주체인 교사들은 추락한 교권에서 회복을 하지 못한 채 체념과 극단적 선택으로 해결책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교육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학부모의 힘이 강해지면서 일부 무분별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과 갑질, 아동 학대를 내세운 소송전은 교사들의 사기를 저하시켜 이젠 교육계열에의 지망도 예전에 비해 학력 수준이 턱없이 낮아졌다. 그동안 참아내면서 교직의 보람으로 대신 보상받으려던 경제적 처우도 교사들에게는 더 이상 인내하기에 벅차다. 교권이 끝도 없이 추락한 탓에 제2의 삶을 찾고자 명예퇴직을 원하는 교사가 날로 늘고 있다.
이제 교사가 자라나는 2세들만을 보고 말없이, 티없이 살기엔 너무도 사기가 저하되고 소명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묵묵히 간직하던 교사의 보람과 자긍심, 자부심은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 이를 어떻게 회복하고 다시 일어설 것인가? 언제쯤 경쟁교육이 아닌 인간의 존엄교육으로 행복을 추구할까? 교육자는 어떤 난관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한없이 작아지는 것일까? 이 나라가 이렇게 혼란과 무질서에서 언제쯤 다시 일어서고 당당하게 전진할 것인가? 잠 못 이루는 요즘, 이는 필자 한 사람만의 예외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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