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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시험의, 시험에 의한, 시험을 위한 ‘시험능력주의’를 신봉한다. 이는 종교적 도그마를 초월하는 거의 우상숭배 격이다. 수많은 욕구와 민원으로 ‘갈등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이 거의 암묵적인 동의를 견지하는 것이 바로 시험에 의한 공정성 유지다.

따라서 이 나라의 청소년들을 시험의 노예로 만들어 시험의 지옥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무한경쟁 입시교육은 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반교육’이자 ‘반인권’적인 폭거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청소년은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유지하고 매년 5~6만 명의 ‘학교 밖 청소년’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우울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간다.

교육입국(敎育立國)을 지향하는 우리는 한때 교육의 힘에 의한 ‘한강의 기적’의 표상이었다. 6.25 전쟁의 폐허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을 활짝 피운 우리의 교육은 과거 산업화의 1등 공신이었으며 현대의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과학⋅기술 국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이제 노후화되었고 각종 노환의 증상처럼 강력한 처방과 소생술이 필요한 지경이다. 이는 이미 국내외의 석학들과 미래학자들의 우려의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우리 교육의 컴퓨터 채점의 선다형 시험만능주의에 의한 인재 육성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공정’이란 화두가 시대정신이 되어 온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동시에 경쟁을 합리화하고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사실 ‘공정’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과정이나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공정 프레임에 갇혀 이를 ‘침소봉대’하는 국민의 의식이 공고해졌다. 여기엔 ‘아빠(부모) 찬스’라는 불공정으로 인해 왜곡된 한국의 대입 제도가 바로 그 원인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시험형 인간’으로 양육되고 있다.

시험능력주의가 낳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라 불리는 인재들을 주시해보라. 그들은 초중고 12년간 극심한 경쟁 교육에서 살아남은 승자들로 한때는 공부의 신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들은 학창 시절 자연스럽게 몸으로 가슴으로 머리로 흠뻑 배어 든 우월감으로 출세와 성공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교육 가치와 학벌계급사회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은 적자생존의 증거자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회에서 사법 농단, 의료 파업, 파벌 정치, 교육 카르텔 등등 자신들만의 굳건한 성채를 구축한 기득권자로 군림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를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이 자신들이 쟁취한 당연한 권리이자 특권이라 여기는 의식과 행태다. 그것은 한때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대학생 중에 ‘자신은 여기까지 오느라 온갖 공을 들였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기에 이른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이렇듯 우리의 엘리트 중에는 ‘차별을 찬성’하는 매우 강박적이고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불안하하고 폭력적인 인간의 면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죽음으로 사수하며 세습사회를 형성한다.

우리의 교육개혁은 매번 입시에서의 공정성에 초점이 주어지고 있다. 하지만 수능시험은 공정을 명분으로 컴퓨터 채점에 의해 기계적인 ‘시험형 인간’을 낳고 이는 사유를 죽이고, 개성을 파괴하며 자유를 억압하는 강박적 정답 찾기를 내면화한다. 시험은 교육의 보완재가 아니라 성적으로 줄 세우기 위한 도구이다.

따라서 학생의 지적⋅사회적 능력 결여를 부채질하는 수학불능자로 만드는 주범이다. 이제 우리의 교육은 모두가 성장⋅발전을 이루는 상생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경쟁 없이도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 도약한 유럽 국가들을 보면서 시험에 몰입한 사교육 공화국 오명까지 벗는 과감한 교육개혁, 아니 교육혁명을 꿈꾸는 것이 순진한 이상주의자가 아닌 부조리하고 반교육적인 현실을 혁파하는 혁명가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전재학(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