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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상 동북아역사재단 국제표기명칭대사

지난 11월 22일 부산에서 개최된 대한민국해양연맹 창립 20주년 기념 공개학술회의에서 국민 정서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동해표기문제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였다. 청중들 대부분이 해양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이어서 그랬는지 강연에 대한 호응도가 매우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학술회의이전에도 국내외에서 학생, 교사, 차세대 동포 등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동해표기문제에 관한 강연을 해 왔다. 강연 때마다 느낀 것은 많은 분들이 독도만큼이나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문제의 본질이나 실상 등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동해표기문제는 동해수역의 명칭을 우리나라는 ‘동해’로, 일본은 ‘일본해’로 부르기를 원하면서 분쟁이 발생하였고, 이것이 양국 간 외교문제화 된 것을 말한다. 일본이 국제적으로 ‘동해’가 ‘일본해’와 함께 사용되는 것을 수용할 경우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나, 일본은 ‘일본해’ 단독표기의 정당성만을 주장하면서 ‘동해’ 명칭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고자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정부는 유엔, 국제수로기구(IHO) 등 국제기구, 각국 정부 및 지도제작사 등을 상대로 ‘동해’ 명칭의 역사성과 타당성을 홍보하고 이들이 ‘동해’를 ‘일본해’와 함께 사용하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1965년 한일어업협정 교섭 당시 이미 일본 측과 이 문제를 협의하였으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협정문의 한국어본에는 ‘동해’로, 일본어본에는 ‘일본해’로 각각 표기된 바 있다.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우리 정부의 본격적인 문제제기는 유엔 가입 다음해인 1992년 8월 개최된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대표단은 국제적으로 ‘일본해(Sea of Japan)’가 단독 사용되고 있는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고 최소한 ‘동해(East Sea)’가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97년 4월 국제수로기구(IHO) 제15차 총회에서는 이 기구가 1929년 초판, 1953년 제3판을 발간한 해도제작지침서 󰡔해양과 바다의 경계󰡕 상에 동해수역이 ’일본해(Japan Sea)’로 단독표기 되어있는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개정판 발간 시 ‘동해’가 병기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후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현재 이 사안은 국제사회에서 지명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그간 우리 정부, 학계와 시민단체의 노력이 어느 정도 결실을 맺어 국제적으로 민간부문에서는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하는 현상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동해’ 명칭의 역사적 근거와 지도제작상 지명에 분쟁이 있을 경우 관련국들이 원하는 이름을 병기해야 한다는 국제기구의 권고 등이 인정을 받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지도제작사들이 발간한 지도집이나 대부분의 온라인 지도상에는 ‘동해’가 ‘일본해’와 병기되고 있다. 각국의 주요 언론사들도 기사에 ‘동해’를 병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와 유엔 사무국은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논거에 따라 여전히 ‘일본해’의 단독표기 방침 또는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나 국제기구의 담당자들은 일본과 문제를 원만히 풀어가기를 바란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러한 점에서 2014년 초 우리 동포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미국의 버지니아주에서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토록 하는 법률이 제정된 것은 외국의 공공부문에서도 ‘동해’ 병기를 수용한 매우 획기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이법으로 인해 현재 미국에서 새로이 제작되는 교과서나 교육용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와 병기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일본의 반대와 견제 속에서 국제사회가 오랜 기간 유지해온 ‘일본해’ 단독표기의 관행을 깨고 ‘동해’를 병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토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가 더 이상 보편적 명칭이 ‘일본해’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수역의 명칭에 관해 한일 간에 분쟁이 있다는 사실의 확산과 함께 ‘동해’가 병기된 세계지도가 계속 늘어나도록 적극적인 교섭과 홍보를 해 나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동해표기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있다면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학계, 시민단체의 활동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지지가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공감대 형성을 위한 첫걸음은 바로 자라나는 세대들에 대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국제표기명칭대사로서 교섭업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에도 동해표기문제에 관한 강연요청이 오면 우선적으로 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정역사교과서에 ‘동해’ 명칭과 관련된 기술이 포함된 것을 계기로 학교에서의 동해표기문제에 대한 교육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