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엽(경기 효명고등학교 교감)
요즘 들어 교육이 본질을 떠나 갈팡질팡한다. 한 마디로 목적 또는 방향성이 없다. 피곤한 모습으로 직장이니까 출근하는 교사들. 나이스에 접속하면서부터 다그치는 수많은 협조요청 보고 자료들. 경기도는 매주 수요일을 공문 없는 날로 정했다. 그러나 지키지 못할 헛소리였다. 세상엔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가. 국회의원들조차 갑자기 국감자료가 생각났는지 몇 년간 자료를 파악하라는 무례한 공문을 긴급요청하기 일쑤이다. 게다가 도의원, 시의원, 교육청 담당자들로부터 공문과 기타 별의별 시답지 않은 공문이 무차별 도배되고 있다. 그리하여 하루는 공문으로 시작하여 공문으로 끝난다.
교육감도 그동안의 정책의 방향을 검토하고 문제 사안들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잘못된 교육정책을 리콜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무슨 트레이드마크라도 되듯 ‘공감’이 없는 홍보에 주력한다. ‘공감혁신교육’의 ‘혁신’이란 말도 듣는 것부터 식상하다. 과거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의사회 구현’을 표방했던 것처럼. 이제는 감성적 어휘조차 신선함을 잃었다. 더욱이 뜬금없는 ‘마을공동체교육’, ‘민주시민교육’, 게다가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처럼 생각했는지 ‘청렴서약’은 참 낯 뜨겁다. 도대체 교육의 수장으로서 줏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애들은 애들대로 학문의 희열 대신 방종의 일탈을 누리고, 선생은 선생대로 가르침의 보람 대신 휴직의 즐거움 또는 개인주의적 삶으로 도피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고 3 수능이 내일 모레로 다가와 마음은 애가 타는데, 정작 교실의 아이는 기꺼이 미래를 포기하고 사회인이 될 기쁨에 젖어 본능에 충실하다. 이 세상은 아이들에게 있어 얼마나 좋은 무대인가. 부모가 뭐라고 잔소리를 포기한 세상, 진보적 인권조례가 있어 비무장지대의 보호막을 누리는 세상. 그렇게 조숙하게 기형이 된 아이들은 교사의 가르침이나 꾸중을 정중히 거절할 줄 알며 자신의 감정도 여과 없이 표출할 줄 안다. 이런 것이 진보교육감들이 바라던 ‘꿈’과 ‘끼’이며 민주시민의 역량인가.
도대체 이 땅에서 선생이 할 일이 무엇인가. 그냥 애들 착하게 가르치고 아름다운 미래사회를 이루도록 사랑의 소중함을 심어주고, 인류가 쌓아온 문명과 슬기를 가르쳐주는 것 아니겠는가. 나보다 남을 사랑하며 인의예지를 지켜 살게 하는 것 아닌가. 삼국유사에서 마늘과 쑥으로 곰을 사람으로 만들었듯이 미성숙한 자아를 선하게 다듬어 세상의 평화공동체를 만들게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오늘의 교육은 그들을 버르장머리 없는 곰으로 키우고 있다.
자기소개서 몇 줄도 쓰지 못하는 아이, 독후감은 고사하고 일기도 쓸 줄 모르며 반성문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 입을 열면 자극적인 욕설이 유창하게 터지는 아이. 정말이지 정의가 무엇인지 또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인간의 도리조차 모르며 그저 휴대폰과 동일자아가 된 아이들. 그들이 알렉산더를 아는가 아니면 호머나 소포클레스를 아는가. 나아가 칸트나 하버마스, 베토벤이나 릴케를 아는가.
환경은 인류에 의해 파괴되고 국제정세조차 다급해져가는 상황에서 그리고 경제적 침탈이 자행되고 첨단지능의 경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은 모든 것에 우선하여 인문학적 윤리가 시급한 시점이다. 인간의 참 정신이 고갈되면 문명은 행복이 아닌 파괴의 신을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운이 걸린 오늘날 정치인이나 교육 관료의 의식수준을 보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들은 툭하면 개혁과 혁신을 말하지만 혁신의 대상은 오히려 그들이다.
옛날 우리 조상은 문(文)과 무(武)를 겸비했다, 그것은 통시적이고도 참으로 높은 지성의 개념이다. 현재도 그렇다. 높은 자리일수록 지혜와 겸손, 분수와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감은 더더욱 그렇다. 그가 놓는 바둑 한 수 한 수는 미래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래서 판을 새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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