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주철 (경기 화성매송초등학교 교사)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이 학급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는 코너가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고, 모든 학생의 이름을 불렀을 때 감격의 순간은 절정에 달했다. 입시 교육에 젖은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제자들을 생각하는 선생님의 마음도 고마웠다. 초등학교처럼 담임교사 중심의 학급 운영이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는 여러 교과가 있다 보니 많은 수의 학생 이름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학급에 누가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어떠한 꿈을 갖고 사는지도 모른 채 입시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현실은 분명 많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우리나라 청소년은 매일 1.5명으로 한 해 500여명에 달한다. 이는 OECD 국가 중 1위라는 기록으로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존중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친구든 어른이든 사랑과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절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일은 겪지 않을 것이다. 풀꽃도 아름다운 꽃이 되는 학교 살리기 교육에 몇 가지 희망사항을 적어 본다.
우선, 인간적인 학급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을 때 희망을 갖고 산다.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때 자기 존중감이 높아지며 꿈을 꾸게 된다. 10여년 전, 한 학급이 47명인 반을 가르쳐본 적이 있다. 개별 학생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어려워, 수업은 교사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학생을 통제하기 바빴다. 학생들은 ‘나만 성적 올라가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발동되며 교육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과 향상에 머물렀다. 현재 필자가 담임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한 학급 인원수는 16명으로, 교사는 각각의 학생에게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기에 충분하며, 학생들 또한 또래 상호 간 인간 중심으로 학급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수업은 학생 하나하나의 배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상호 배려하며 나와 너를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학급당 인원수는 단지 교사를 편하게 해주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큰 의미를 담고 있다. 학생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문제, 존중과 배려의 중대한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급당 인원수를 줄이려면 국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국가 예산은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곳에 써야 한다. 빚을 지더라도 국가 빚은 이런 곳에 져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꽃처럼 아름다운 학생의 생명을 살리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희망사항은 학생을 서로 비교하지 말자이다.
나만 공부 잘 해 성공하는 문화는 행복한 공존의 학교 분위기를 크게 흐려 놓는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전인교육에 반하게 된다. 경쟁은 개인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되, 교사는 개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개성을 칭찬해야 한다. 지난 9월 이래 부정청탁방지법인 일명 김영란법 시행으로 교수에게 캔커피를 건넨 학생이 신고를 당하는 메마른 사회가 되었다. 바로 대표적인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는 셈이다. 학교가 행복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남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이자 공동체의 행복이 되어야 한다. 따뜻한 공동체는 진정한 안정감을 가져와 삶의 희망과 꿈을 가져다 주어 모두가 행복한 동행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일에 쫓기는 교사를 구해주어야 한다.
교사들 상호간 대화를 들어보면 대부분 “일에 쫓겨 학교 생활이 바쁘다”라 모아진다. 그리고 그 바쁜 생활이 업무를 시행하거나 공문을 처리하는 것에 집중된다. 학생의 삶을 살리는 학교에서 학생을 제외한 일에 몰두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이 집단적 직무유기를 바로잡고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일을 줄여주어야 한다. 학부모 입장에서도 담임교사가 공문 처리하느라 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면 과연 분노하지 않을까? 교사가 학생지도를 위해 연구하고 독서하고 자료를 수집하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교사를 사무직으로 보는 순간 우리 교육의 미래는 어둡다. 인간이 인간답게 가르치고 배우도록 해주는 스승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는 자긍심을 갖고 있을 때 대한민국의 우수한 인적 자원은 미래 사회에 대응하는 창의성과 무한상상력으로 무장되어 변화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김춘수는 꽃에 각각의 이름이 있듯이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라고 권고하였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이름을 불러줄 때 사람은 꽃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 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사람은 저마다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흰 꽃만 꽃일까? 빨간 꽃만 꽃일까? 그렇지 않다. 화려한 꽃도 꽃이고 세상의 모든 풀꽃도 꽃이다. 사람 역시 이름이 있고 태어나면 누구든지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학교의 여러 문제로 존재 자체가 잊혀진다면 그의 삶은 과연 행복하거나 의미가 있을까?
교사와 학생이 함께 좋은 수업을 충실히 만들어가고, 교실이 인간적인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본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이는 사람을 살리고, 학교를 살리고, 우리나라를 살리며 모두를 살리는 일이다. 교사 집단은 특수하게도 양심과 사명의 공동체로 남고 싶어 한다. 학생의 성적표로 교사를 줄 세우지 말아야 교사는 학생을 인간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학교가 인간적으로 따뜻한 존중과 배려 속에서 배움이 이루어질 때 학생들은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에 동참할 것이다. 학생은 학교 공동체 속에서 본 것을 가지고 남을 위한 세상으로의 배려하는 인간으로 성장해 좋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라는 것이다. 학업 성적만으로 학생을 보지 말고, 인간의 고유한 역할을 지닌 존재로 태어났음을 인식할 때 풀꽃도 꽃이 되는 교육은 비로소 시작할 것이다.
.gif)
.jpg)
.jpg){kind=small}
.jpg)
.jpg)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