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이 크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병헌이와 만났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니 본래 연기를 하고 싶었다며 대학로에서 연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평상시에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자신의 감정을 잘 묻어두었다가 집에서 그 감정을 생각하면서 연습을 하면 더 깊이 있는 연기가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병헌이에게 해결하고 싶거나 원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묻자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진지해졌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무언가를 썼습니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태어났는가? 나는 어째서 정상적인 가족을 갖지 못할까.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행복 수 있을까. 내가 게을러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 난 걸까?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 하신다. 나는 도움이 안 되는 건가.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다. 동생이 예민한 것도, 어머니께서 혼자 힘드신 것도, 아버지의 외로움도 그게 전부 나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없었더라면 모두 행복 할 수 있었을 수도…하는 생각이 요즘 매일 밤 자기 전 떠오른다. 가끔은 부모님이 나를 무슨 눈으로 어떻게 보시고 생각할 지도 알고 싶다. 예전 어머니 말씀대로 나만 아이었으면 다들 행복했겠지. 꿈도 미래도 능력도 없는 내가 한심하고 이렇게 밖에 크지 못해서 너무 죄송스럽다. 그저 미안한 마음만 들고 잘해 주고 싶은데 못하는 내가 너무 싫다.’
긴 문장들을 쓰고 나서 고개를 든 병헌이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게 하고 느낌을 물었더니 괴롭고, 슬프고 정말 살기 싫다,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괴로움에 대해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모님이 부부싸움으로 인해 따로 사는 현재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이 싸우실 때 동생이 모두 보는 동안 내가 아무 것도 못 한 채 방관한 점, “어머니께서 나만 아니었으면 결혼을 안했고,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을 때 정말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괴로운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 병헌이의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분위기를 바꾸고 억압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비록’ 문장을 사용하여 감정치유 기법을 실시했습니다. ‘나는 비록 어머니께서 나만 아이었으면 결혼을 안했고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였을 때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온전히 마음속 깊이 사랑합니다.’ 라고 반복하면서 가장 불편한 감정을 직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병헌이와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회피해왔던 상황을 영화관 기법을 사용하여 재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직도 어린 병헌이는 화장실에서 울고 있다고 해 조용히 다가가 포근히 안아 주라고 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사랑에 있다고 합니다. 특히 그 핵심에는 엄마와 함께 나누는 사랑에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이와 정서적으로 공감해 주지 못한 채 자라게 되는 아이들은 본인의 감정에 혼란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불안인지, 우울인지, 외로움인지 그 감정의 정체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며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 또한 모르게 되어 삶이 힘들어 지게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그 결핍은 채워지지 않고 삶의 한편에서 고통스럽게 작용하게 됩니다. 또한 그것은 무의식으로 게으르고, 회피하는 등 복수의 한 형태로 표현될 수 도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보는 방법을 바꾸기 전까지는 점점 더 악순환이 됩니다.
병헌이는 매일 심한 감정에 혼란을 겪고 있으며, 무의식적으로 복수의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방승호
사회복지학 박사
한국모험상담나눔센터
「기적의 모험놀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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