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호랑이 탈을 쓰고 다녀 보았습니다
여름 방학하는 날 27개 학급 전 교실을 호랑이 탈을 쓰고 돌아다녔습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이 반갑게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한번 써보자고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탈을 쓰고는 신기해하면서 즐거워합니다. 호랑이 탈은 이젠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탈을 왜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되돌아보았습니다.
2012년 서울 중랑구에 있는 중화고등학교에 교장 발령을 받았습니다. 사람들한테서 교장 발령 축하 문자가 왔습니다. “교장 선생님 저 장학사인데요. 전에 그 학교 장학 나갔다가 교무실에서 아이들한테 선생님이 심하게 당하는 걸 봤어요. 힘드시겠네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축하인지 협박인지 구분이 안 됐습니다. 다음날 그분께 “혹시 그날 교장도 혼이 나던가요?”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았다 합니다. 교장은 안 그랬다니까 한 번 가보지 하면서 웃어넘겼습니다.
부임 후 제일 먼저 피부에 와 닿은 문제는 흡연, 폭력 문제였습니다. 학교폭력은 수시로 일어났고, 건물 안과 밖에는 언제나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모험놀이 상담의 대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말입니다.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을 하다는 것은 모래 위에 성 쌓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을 알기에 힘이 들지만, 변화가 생길 거라는 믿음으로 학교에 가면 아이들에게 항상 웃는 얼굴로 대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이벤트 가게를 보았습니다. 그곳에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벽에는 호랑이, 원숭이 등 여러 탈들이 있었습니다. 저거다 싶었습니다.
다음날부터 탈을 쓰고 학교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첫날 호랑이탈을 쓰고 나갈 땐 창피해서 거울을 보며 망설이고 또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엔 당황하면서 수군거렸습니다. 계속 교실을 돌아다녔습니다. 교실의 아이들은 놀라며 웃음으로 반겨주었습니다. 뒤에는 어느새 많은 아이들이 웃으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래” “정말?” “와, 짱이다” 그날 거의 5백 명의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한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매일 다른 탈을 썼습니다. 아이들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장실 문패 밑에 ‘꿈 발전소’라는 명패도 달았습니다. 아이들이 편하게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학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니 수업시간에 선생님들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분위기는 다른 일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자치회에서 학교가 더럽다며 청소할 사람을 모았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모집방송을 했는데, 아이들이 물밀듯 참여를 해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아침에 아이들 스스로 청소를 했고, 그 행동은 어느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습관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연말에 1학년 전원이 참여하는 연극제였습니다. 1주에 한 시간씩 했던 연극 수업이 발전해서 연극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어느새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올해 초 아현산업정보학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왜 중화고에서 떠났는지. 더 이상 쓸 탈이 없어서 그랬다고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실제로 잘 모르겠습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모든 행동들이 즉흥적이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즉흥적인 행동에 재미있게 받아들여 준 선생님과 아이들이 새삼 고맙고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방승호
사회복지학 박사
한국모험상담나눔센터
「기적의 모험놀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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