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 지인들과 함께 다녀왔다. 산업화 시대의 역동적인 전시물도 관람할 겸 체험관 개관식 참석차 가게 되었다. 체험관에서 경부고속도로 준공식(1970.7.7.)을 재현하는 행사에 필자를 포함한 참석자들 모두 깊은 감회에 젖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국민소득이 255불 정도로 보릿고개가 존재했고, 자가용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국가 발전의 발흥(勃興)에 탁월한 지도자가 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몸소 경험한 세대이기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1945년 이후 독립한 140여개 나라 중 세계 최빈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개도국의 전범(典範)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한데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중 어느 쪽도 이 놀라운 국가발전의 배타적 독점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계속해서 주장하는 것은 오만이요 독선이며 경도된 도그마(dogma·독단적인 신념)일 뿐이다. 세계의 어느 대통령도 공과는 있게 마련이다. 공(功)은 널리 선양하고 과(過)는 반면교사로 삼는 지혜가 요구된다.
단채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였다. ‘시간적 비대칭(Temporal value asymmetry)’이론에 의하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더 가치 있고 더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것이 인간의 기본 속성이라고 한다. 세계 13위의 경제 볼륨을 자랑하는 국민으로서 우리 사회의 이성과 양식을 찾을 때가 되었다.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 가는 길에 지하철, 버스 노선 어디에도 안내 표지판이 없다면 내국인은 물론이요 외국인에게는 뭐라 설명할 것인가?
관계자에게 물어 보니 서울시장의 답변이 궁색하다 못 해 실소(失笑)를 금 할 수 없었다. 마포를 지역구로 하는 야당 정치인의 반대 민원 때문이라고 한다. 덧붙여 현행 규정 하에서는 강제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지난 봄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 센터, 봉화마을의 노무현대통령 사적지를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도로의 안내판 표시가 잘 되어 초행길인데도 어렵지 않게 둘러보고 왔다. 전직 대통령 기념관 가는 교통안내판 하나 설치하는데 증오의 역사관이 작용한다면 이는 국가적 불행이다. 서울시장, 정청래 의원처럼 공동 우물에 침을 뱉어 버리면, 그 자리에 함께 모여서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기가 불편해 지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다.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국가 지도자를 꿈꾼다면 하루라도 빨리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뜻을 같이 이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여 환호할지 모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옹졸한 심보에 등을 돌리기 십상이다.
이는 숲속에 있으면 숲이 안 보이는 이치와 같다. 약간의 사실에 과장된 의견을 섞어 국민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선동투쟁은 해원(解冤)과 상생(相生)을 바라는 국민들의 정서에 반하는 것이 시중의 여론이다.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은 분노와 증오를 레이저처럼 쏟아내는 대신 위로와 치유를 노래하였다. 일부 정치인의 ‘기억의 오류’에 의한 ‘과잉 정당화’는 국민통합에 암적 존재가 될 뿐이다. 해방 후 10명의 전직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소중한 분들이다. 다만 국민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호감도가 다를 수는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설립된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 가는 길에 지하철역, 버스정류장에 안내 표지판의 설치를 안 하는 것은 공무담당자의 직무유기이자 역사의 부정이라는 대다수 시민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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