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한 학생의 글이 올라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중 갑자기 비상벨이 울려 놀랐는데, 고장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고, 이를 전해들은 학생의 어머니가 다음 날 학교로 찾아와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그 글의 댓글에는 비상벨 고장으로 인한 비슷한 학생들의 경험담이 달렸고, 학교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세월호 이후 정부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교육부와 각 교육청은 관련조례와 규정을 다듬고 안전교육을 의무화하는 한편 학교위기대응매뉴얼과 지침 등을 만들어 배포했다. 외견상 많은 부분들이 바뀌고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일 년 동안 학교의 비상벨조차 제대로 점검,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몇 년씩 고장 난 채 방치된 비상벨이 오작동 되어도 별일 아니니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학교현장의 안전의식이 계속되는 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고 제도를 정비해도 결국 시간 때우기 식 교육이나, 보고용 위기대응매뉴얼 만들기라는 새로운 업무만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습관적인 부주의를 깨고 근본적인 안전의식이 자리 잡기까지는 보다 많은 아이디어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학교생활에는 다양한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화재, 폭발, 지진, 폭설, 홍수, 태풍 등 전통적인 위험은 물론이고, 테러, 흉기난동, 인질사태, 강력 범죄, 협박 등 새로운 위험도 가까이 다가온 시대이다. 단체 여행에서의 사건사고 위험과 학교폭력, 성폭력 등은 언제나 함께한다. 때문에 학교는 일반적인 안전에 대한 대비와 훈련은 물론이고, 예상외의 돌발위기에 대해서도 대응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현실도 모르면서 학교에 너무 많은 부담을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학교는 안전교육 이외에 이름도 다양한 의무교육 시간들이 배정되어 있고 더불어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는 학과수업도 충실히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종류의 위기상황에 대해 일일이 교육하고, 몸에 익힐 훈련시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되면 해당 학교와 교육당국은 예외 없이 위기대응 능력에 대한 대중의 엄청난 비난에 맞닥뜨리게 된다. 학부모를 포함한 대중의 학생 안전에 대한 기대치는 항상 학교의 현실보다 높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대비해도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피치 못해 발생한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현명한 위기대응으로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하물며 잘못된 위기대응으로 아까운 인명을 잃거나 피해를 키워서는 안 될 일이다. 학교와 교육당국은 위기대응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현실이 어렵다고 교육현장의 안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화재, 지진과 같은 재난은 대피 훈련을 반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설물의 상시적인 점검은 두말할 필요 없는 기본사항이다. 지진, 태풍, 폭설 등 기상재해는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비교적 예상 가능한 재해이므로 준비된 위기대응매뉴얼에 따라 충실히 훈련한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발생되는 돌발위기 현장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째, 리더의 판단
위기대응매뉴얼에 현장책임자로 명시되어 있기도 한 교장의 판단과 초기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실제 교장선생님들은 위기상황 발생 시 상급 보고 이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까?
교장은 최초현장의 정보와 피해상황 파악, 안전유지, 피해자 구호, 행정지원, 인력배치 및 지원, 상급보고, 학부모 연락, 언론대응, 필요한 경우 범인정보 파악에 이르기까지 현장의 모든 상황에 대해 확인하고 판단하고 통제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 모든 활동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혼돈의 상황 속에서 각종 압박감을 이겨내고,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매 순간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대응하는 것은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활동이지만, 현장 책임자로서 피할 수 없는 역할이다. 그런데, 상황이 닥쳤다고 갑자기 위기대응능력이 초능력처럼 발휘되지는 않는다. 상황판단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위기현장에서의 P.T.H(Place. Tell. Help)
훈련되지 않은 돌발적 위기상황에서 어린 학생들은 두려움에 움직이지 못하거나, 친구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더 큰 피해를 불러오게 되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억하고 실행할 수 있는 위기대응 현장 기준을 만들어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현장 P.T.H
1. Place 안전한 장소, 안전한 위치를 확보하라(나의 안전)
2. Tell 주위에 위험상황을 알려라(위험전파)
3. Help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판단하고 행동하라(도움행동)
현재 위기대응 교재는 위험상황에 따른 백과사전식 나열이 대부분이다. 주로 응급처치와 교통안전, 수상재난, 화재, 전기, 기상악화 등을 다루고 있다. 유치원 아동을 위한 교재부터 초.중.고 학생을 위한 교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들을 안전전문가로 만들기 위한 학교안전관리지도사 자격을 위한 교육과정도 의료과정이 추가될 뿐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각종 위험상황에 대한 지식을 모두 알고 적절한 대처방법까지 익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학생과 교사가 맥가이버처럼 탈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학생과 교사 교장, 각 위치에 따라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현장에서 활용할 매뉴얼은 단순해야 한다.
2005년에 위기대응 3.3.3원칙(3시간내 대책팀 소집, 3일간 긴급대응, 3주간 예후 관찰 및 추가대응)을 발표하고, 위기대응매뉴얼 작성법을 무료로 배포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공공기관을 포함한 각 분야의 위기대응시스템은 여전히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교안전만은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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