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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묵은 교단일기> 애인들과의 서해 여행

"다음 행사는 여름 바다 낚시회"

"우리 애인들 모두 잘 생겼는걸…"

"야, 너 6학년 때 도공집 딸 연옥이와 연애한 것 생각나니?"

"야, 황해 바다가 이렇게 푸른 것 봤니? 동해 같은데…"

"선생님 공장 시찰 시, 우리 직원들이 모시는데 혹시 결례나 부족하고 불편하게 해드린 게 없는지 걱정이 됩니다"

S공장장의 말이었다.

나는 40년 전 기지촌 맘모스(86학급. 6천4백명 재적. 3부제) 국민학교의 6학년 부장교사였다. 내가 맡은 6학년생은 6백5십명이었으며 담임교사 10명에다 보조 강사까지 11명이 학년 교사 조회를 하는 내 연구실은 늘 붐볐던 생각이 난다. 동국교 50회 1반 반창회 애인들 12명이 모여 2014년 첫 빼빼로데이에 서해 여행 시, 기념 촬영을 하면서 나눈 대화 내용을 한 글자도 빼 놓지 않고 삼성토탈 안내 책임자의 멘트까지 글머리에 적어보았다.

작년 추석 전부터 벼르던 우리 애인들의 여행이 드디어 역사적으로 감행되는 순간이었다. 삼성의 임원 R군, 수원시 시의원 L양(?), 육군 모 사단 원사 B군, 경기도청 K과장, 사업가 M군, 유통업체 대표 P양(?) 등등…….

이름은 알아도 모습이 아련하고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복숭아 얼굴의 소년·소녀들이 이 날은 머리에 희끗희끗 잔설이 내린 50대 중년이 되여 만나 나를 기쁘게 하려 재롱(?)을 떨었다.

"아, 글쎄 얘 내들이 명찰도 안 달고 학교에 왔대요. 선생님 혼내 주셔야 돼요"

정말 이름은 알아도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한 탓인지 전연 알지 못하게 변해 있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고생고생 끝에 자수성가(自手成家)가 하여 시의원이 된 L양, 8.15경축식 석상에서 영부인 육여사를 총격한 문세광 사건 훈화를 내게 듣고 군인이 되어 나를 기쁘게 하려고 결심 끝에 육군 모 사단 원사가 되었다는 B군 등…. 회고담이 오고갔다.

"추운 날에는 창문을 열고 보드카 한 잔을……."

어느 러시아 시인의 시를 낭송하면서 우리는 '모스코바산 보드카' 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하였다.

"노익장(老益壯)의 은사(恩師) 님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위하여……."

"우리 애인들 건배~"

건배사도 다양하게 만찬석상은 풍성하였다. 중국 산동성의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충남 구산항의 S토탈 공장은 가히 세계적 규모였으며 한국의 공해산업을 무공해 공장으로 건립, 대중국 수출의 최단거리에 위치했는데 50% 프랑스 기술, 50% 삼성자본, 64%의 대중국 수출 장충 체육관 보다 큰 돔, 3천8백 명의 기술자들이 실내 컴퓨터로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수십만 평의 산업도시(항구) 건설로 세계적 규모를 자랑… 이 모든 것이 자랑스레 보였다.

'내 제자 R군의 힘으로 움직이다니…'

"선생님, 선생님 모습이 마치 산업자원부 장관 같은 풍채를 보이네요"

나의 얼굴을 붉히게 하는 말을 했다.

"선생님, 오늘 아침 기상대장이 전화를 했는데… 우리 동국교 50회원들의 모임을 위해 따뜻한 기온 상승을 시켰다누만요, 하하…"

유머도 일품(一品)이었다.

새벽 6시 기상, 여덟시 의정부 역, 10시 구산항 도착, S공장 시찰, 만찬, 기념품 전달, 2014년 여름 조어대회(釣魚大會) 예비 시찰, 구산항 시찰, 어시장 방문… 교가 합창을 끝으로 일정이 끝나는 줄 알았더니 유통업체 대표 B양의 저녁 만찬이 내가 사는 노원구에서 열리고 끝났다.

"선생님, KBS보도국에 연락하려다 선생님 허락을 못 받아서…"

"동아일보 특집부 기자 동행도…"

지금도 나의 사랑하는 옛 제자(애인)들은 내게 맞았던 '사랑의 매'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선생님, 요즈음 선생님들은 사랑의 매도 못 든 다네요. 안 됐어요"

"젊은 교사의 혈기(血氣)와 열정(熱情)으로 '사랑의 매'라는 미명(美名) 하에 매를 들었었지…"

"아니에요. 선생님이 저를 엄격하게 매를 들고 가르치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마도 오늘에 제가 아니었을 거예요"

이 말을 들은 나와 내 애인(제자)들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나 보다 더 행복한 교육자 또 있을 것인가?'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앉아서 술을 마시고…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술잔을 올리는… 이조시대식 만찬이었다. 그러나 하나하나 나를 포옹하고 아쉬운 이별을 하며 2014년 여름 바다낚시 대화를 기약하였다.

'바다낚시 트로피와 상품은 내가 마련해야지…'

[김창종 수필가·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