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상의 가장 주요한 변수는 무엇인가. 헌법과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의 정치관련법규들인가. 그것이 아니면 정당, 이익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집단인가, 그것도 아니면 소수의 권력자와 정치엘리트들인가, 이제는 그러한 접근들이 대중 민주주의시대의 거친 파도 속에서 분석방법으로서의 적실성을 상실하여가고 있다. 정치체계의 심리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정치문화가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현상의 분석과 예측에 있어서 정치문화접근법의 효용성이 아무리 높다해도 그 역시 방법론상의 문제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정치현상 설명과정에서 보다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무려 2300여년전에 제도와 문화를 결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체제분류 이론은 대단한 선구자적 탁견이라 할만하다.
그처럼 제도와 문화는 동전의 그것처럼 정치체계의 앞뒷면에 해당한다. 이를 양자의 상합성(Congruence)이라 한다. 선진화된 정치의식과 행태 즉 문화를 정치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시민의 항거와 민란을 자초할 것이며, 역으로 문화는 답보 또는 전진하고 있는데 집권세력이 자기판단과 편의에 따라 제도만 일방적으로 바꿔나간다면 그곳에는 독재가 이미 자리 잡았거나 또는 독재진행의 조짐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제도와 문화가 서로 잘 융합되고 있는가, 아니면 서로 갈등과 배척관계에 있는가가 정치현상과 역사의 모습을 좌우하게 된다. 한국과 미국의 헌법개정사, 프랑스와 영국의 정치변천사를 비교해보면 더욱 극명하게 입증된다.
인류의 정치변천사를 살펴 보건대 대체로 두 개의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 뒤집는 역사” 이고 다른 하나는 “이어받는 역사” 이다. “뒤집는 역사”에서는 전통의 파괴와 역사의 단절 그리고 반복과 낭비가 따르는데 반하여 “이어받는 역사”에서는 대중의 동참 속에서 전통과 관행을 존중하면서 선대의 역사적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축적해 나가기 때문에 문화와 제도의 상합이 역사의 안정과 발전을 담보한다.
앞에서 말한 정치변천의 유형의 차이는 바로 문화유형의 차이와 직결된다. 그 나라의 지도층과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사고방식, 가치관, 감정, 행동방식을 가지고 있는가 즉 정치문화의 유형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정치체계의 유형이 나타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즉 특정의 권력 체계가 계획적이고 획일적인 정치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문화를 창출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정치체제와 문화는 서로 긴장관계에 있다하겠다. 정치문화는 오랜 세월에 걸친 교육을 통해서 즉, 장기간의 정치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게 마련이므로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할 것이다. 이에 반해서 헌법과 권력구조를 비롯한 정치 제도는 집권세력의 손안에서 쉽사리 농단될 수도 있다. 여기에 역사의 허점이 있다.
정치권과 사회가 독선과 아집으로 불타협과 결사투쟁만을 영웅시하는 문화적 바탕을 고집하면서 그러한 방향으로 국민에 대한 정치사회화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한다면 그 사회는 갈등문화, 극한대결문화의 터전 위에서 매우 위태로운 전체주의사회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단절과 뒤엎음의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이는 오만한 문화가 걷는 운명의 길이다. 반면에 상대주의적 사고방식과 양보, 관용, 타협을 미덕으로 존중하는 겸허의 문화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한다면 그 나라에는 합의문화와 중간 지향적 사회에 터하여 겸허한 정치, 이어받는 역사가 자리 잡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안정적 발전의 역사 속에서 모든 국민이 대를 이어가며 그 수혜자가 되고 계승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 앞에서 이 점에 관한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일의 이 나라 리더십의 피할 수 없는 과제라 하겠다. 그러므로 진정한 리더십은 자의로 제도를 바꿔가면서 권력의 극대화와 영구화를 획책하는 부도덕하고 오만한 집권세력이 아니라, 국민의 의식구조의 민주화와 정치의 투명화를 지향하면서 겸허한 정치문화를 육성하고, 이에 상합하는 제도개혁을 부단히 추진함으로써 국가발전의 터전을 다져 나가는 발전지향적인 합리적 리더십이어야 할 것이다. 재야세력도 그 방향에서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한 문화와 리더십을 양성하는 방법은 교육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학교 교육은 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세사건, 즉 이석기 의원 RO 사건, 교학사 역사교과서 사태, 박 대통령과 여야대표 3자회담 결과를 보면서 더욱 그렇게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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