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훈 기자) 문용린 서울교육감을 보면 와호장룡(臥虎藏龍)이란 중국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무림의 고수인 주인공이 대나무 숲에서 펼치는 검술신이 백미인 영화인데 낭창 낭창 휘어지는 대나무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상대를 제압하는 검기(劍氣)가 가히 일품이다.
6일 서울시교육청 기자실. 문교육감은 자신의 모토인 행복교육 청사진을 담은 올해 주요업무 계획을 발표했다.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 실현을 위해 일반고 자율 교육과정 운영등 17개 실천과제와 52개 세부과제등이 제시됐다.
교육현장에서서는 대체로 두루뭉술하다는 평가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뒤처지는 것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열렬한 박수도 격앙된 비난도 없다. 가업승계 특별전형이니 주말학교니 하는 잔재미를 주는 것 정도가 양념노릇을 했을 뿐 중 1시험 폐지나 일반고 점프 업, 학생인권조례 수정과 교권 보호등 메인 디쉬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말 그대로 용 그려다 뱀 그린 셈이다.
문 교육감은 빠른 두뇌회전과 아이디어가 풍부한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 교육부장관 시절 관료들은 그의 재기 발랄함을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었었다. 그런 그가 교육감으로서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은 명성에 걸맞지 않아 보인다.
내년 선거를 겨냥, ‘득점도 않고 실점도 않겠다’는 전략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보수진영을 의식해 중 1시험폐지는 중간고사만 안 보는 것으로 타협을 시도했고, 인권조례 수정은 교사생활지도권 강화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진보진영의 예봉을 피해갔다. 교총과 전교조 모두 한 줄의 논평도 내놓지 않은 것을 보면 '비기기 작전'은 일단 성공한 듯 싶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얻은 54%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내년 선거때 까지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또 하나, 문교육감이 교육청 조직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한데서 오는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주요 업무계획을 찬찬히 뜯어 보면 문교육감을 둘러싼 집단들의 욕망이 자극적이지 않게 짜깁기 된 느낌을 준다. 5대 정책방향은 올드 하고 17개 실천과제는 의욕이 넘치지만, 구체적 추진계획으로 들어가면 새로울 것 없는 백화점식 나열이 대부분이다.
'문용린표 교육'을 디자인 할 확실한 주도세력이 없는 상황이라면 교육감의 선택 폭은 대단히 좁았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업무계획이 밋밋한데는 학교 현장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문 교육감의 심고원려(深考遠慮)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년 반이라는 짧은 임기동안 무리한 사업 보다 교단안정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교육감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위야 어찌 됐든 남은 과제는 정확한 실천이다. 문용린식 행복교육 ‘액션플랜’은 이제 시동이 걸렸다. 손톱 밑 가시 뽑듯 잔잔한 계획들이지만 그것만이라도 현장에 무리 없이 착근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영삼 정부 5.31교육개혁에 참여한 뒤 김대중 정부 교육부장관을 거쳐 박근혜정부서 세칭 교육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한 문용린 교육감. 교육무림(敎育武林)에서 극강의 공력을 자랑하는 그의 ‘행복검법’(劍法)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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