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정신 건강 문제로 정신과를 찾는 아동·청소년의 수가 4년 새 두 배로 늘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숫자는 통계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의 절박한 신호가 있다. 이 현상을 코로나19나 디지털 환경 변화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이른 나이부터 경쟁의 장으로 내몰아 온 우리 사회의 구조 역시 정면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제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유명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테스트, 초등 입학 전 레벨 평가, 끝없는 선행학습 경쟁은 일부 계층의 과장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은 풍경이다. 외신이 놀랄 정도로 한국의 조기교육 열풍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부모들은 불안하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남들보다 늦으면 기회를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된다.

문제는 조기교육의 효과가 아니라 그 대가다. 어린 나이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지나치게 크다. 영어 단어 몇 개를 더 외우는 대신,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할 시간과 실패해도 괜찮다고 느낄 권리를 잃는다. 또래와 부딪히며 사회성을 키울 기회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조건 없는 사랑 속에서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아이는 이미 평가받는 존재가 된다. 잘해야 사랑받고, 성취해야 인정받는 구조 속에서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아동기의 정서적 안정이 평생의 정신 건강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이들의 하루는 숨 돌릴 틈이 없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마치면 곧바로 학원으로 향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학습 영상과 숙제가 기다린다. 부모와 마주 앉아 하루를 이야기할 시간은 점점 사라진다. 아이에게 부모는 위로의 대상이 아니라 일정 관리자이자 성과를 점검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보다 빠름’이 아니다. 자기 속도로 자라도 괜찮다는 믿음, 실수해도 안전하다는 감각,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정서적 울타리다. 영어 학원에서 단어 하나를 더 배우는 시간보다, 부모가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은 당장 성적으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아이의 마음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 된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지금의 조기교육은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어른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선택인가. 조기교육 자체를 전면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이의 발달 단계와 마음의 신호를 외면한 채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라면 멈춰 서야 한다. 아이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시험장에 선 수험생이 아니라, 보호받으며 자라야 할 존재다.

아동·청소년의 우울과 불안은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사회가 보내는 경고음이다. 그 신호를 외면한 채 속도만 재촉한다면,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더 많은 성취가 아니라 더 이른 붕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