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우 조진웅 씨의 과거 소년범 이력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누군가는 “잊어도 될 과거는 없다”고 질타하고, 누군가는 “소년사법의 취지를 무너뜨리는 마녀사냥”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 논쟁보다 훨씬 더 심각하지만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진짜 문제를 이야기하려 한다. 바로 지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 대입 불허 정책’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학교폭력 가해 이력이 반영된 학생 4명 중 3명이 대입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특히 한국예술종합학교는 4호 처분(사회봉사) 이력이 있는 수험생을 합격시켰다가, 논란이 일자 총장이 직접 사과하고 입학을 취소하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교폭력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정의로운 조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서 제도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기계적인 연동이 낳을 위험한 결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은 ‘학폭 처분’이라 하면 드라마 <더 글로리>에 나올 법한 잔혹한 폭력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문제는 대입의 당락을 가르는 4호 이상의 처분이 반드시 그런 악질적인 사건에만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 간 사소한 다툼으로 심각성·지속성·고의성이 모두 ‘낮음(1점)’인 경미한 사안을 가정해 보자. 이때 피해학생 측이 엄벌을 요구하는데 가해학생도 충분히 반성하지 않아 화해 정도와 반성 정도가 각 ‘보통(2점)’으로만 평가되어도 총점은 7점이 된다. 교육부고시에 따르면, 이 7점은 바로 한예종 사례에서 불합격 사유가 된 ‘4호 처분(사회봉사)’ 구간이다.

즉, 사안 자체는 비교적 경미하더라도 피해자와의 합의 실패나 태도 점수만으로 한 학생의 대학 입학 기회가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사안이 어느 정도 중한 경우라면, 가해학생이 아무리 반성과 사죄를 하더라도 마찬가지 결과에 이를 수 있다.

성인 형사사건에서도 초범이거나 사안이 경미하면 기소유예나 선고유예로 갱생의 기회를 부여한다. 하물며 미성숙한 미성년자에게 교육적 선도 조치인 ‘사회봉사’를 명했다는 이유로 입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엄벌주의 정책이 정작 피해학생 보호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4호 처분만 받아도 대입이 불허되는 현실에서, 가해학생의 보호자는 자녀의 장래를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필사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피해학생은 일상 회복 대신 기나긴 법적 분쟁에 휘말려 고통이 연장된다.

설상가상으로 피해학생에 대한 심리상담이나 치료 조치가 내려진 사안임에도, 행정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학교안전공제회에서 치료비 등의 지급을 보류하는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가해자를 잡겠다고 만든 제도가 피해자의 치료비마저 가로막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심의위원들도 딜레마에 빠뜨린다. 피해학생 보호를 위해서는 전학이나 학급교체 같은 중징계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이 처분이 내려지면 저 학생의 진로가 사실상 막힌다”는 부담감에 주저하게 된다. 사실관계가 모호한 사안에서는 섣불리 학폭을 인정했다가 과도한 입시 불이익을 줄까 우려해 차라리 ‘조치없음’이나 과소한 처분을 택하는 유인이 작동할 위험도 있다.

엄벌하라고 쥐어준 칼이 너무 무거워, 정작 휘둘러야 할 때 휘두르지 못하거나 아예 칼을 거두게 되는 형국이다. 이는 결국 심의의 공정성을 왜곡하고 학폭위 제도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가해자 대학 불합격 = 피해자 치유’라는 단순한 등식이다. 가해학생의 앞길을 막는다고 해서 피해학생이 입은 상처가 저절로 아물지는 않는다. 오히려 입시를 둘러싼 생존경쟁 속에서 사과와 화해, 관계 회복이라는 교육적 가치는 설 자리를 잃고, 학교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전쟁터로 변해 간다.

배우 조진웅 씨 논란에 쏟는 에너지의 일부라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제도의 모순을 바로잡는 데 쓸 수 있었으면 한다. “학폭은 나쁘니 대학도 가지 마라”는 통쾌한 구호 뒤에서, 피해학생의 고통은 길어지고 교육적 회복은 멀어지고 있다. 4호 처분이 곧 ‘입시 사형선고’가 되는 세상은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제도적 폭력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