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대한민국 한강 작가가 이 땅의 새로운 제2의 ‘한강의 기적’이란 역사를 썼다. 24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두 번 째이자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한 것이다. 이전에 몇몇 유명 국내 작가들이 노벨상을 꿈꾸던 것은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54세의 한강 작가가 그동안 꾸준하게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더니 급기야는 민족의 오랜 숙원인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는 하루아침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 ‘꿈은 이루어진다’는 명제를 긴 시간에 걸쳐 성취해 낸 역사적 쾌거이기에 그 기쁨과 영광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뒤에 하산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하듯이 이제부터 우리가 이 기회를 어떻게 ‘독서교육’으로 연계하고 작년 성인 독서율이 43%에 불과한 것을 ‘국민독서운동’으로 펼칠지에 대해 남다른 고민이 필요하다. ‘물 들어 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처럼 주어진 호기를 제대로 활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면 이른바 ‘낙수효과’가 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는 독서가 선택이 아닌 필수의 시대이기에 미래 세대인 청소년의 독서교육을 강화하고 적극 장려해 성인의 절반이 1년에 1권도 읽지 않는 현실을 개선해 독서가 보장하는 ‘국가의 힘’을 키워야 한다.

필자는 한때 인천의 명문 제물포고등학교(1954년 개교)에 교감으로 근무하면서 “독서를 하지 않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당시 ‘책 읽는 학교’ 만들기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전국 고등학교 최초의 개가식 도서관을 보유한 제물포고의 전통에 걸 맞는 독서교육을 다시금 부활하고자 했던 것이다. 국어과 교사들의 열정과 실천으로 학교는 ‘책 읽는 학교’로서의 분위기를 구축하고 교사들의 지도와 학교장의 솔선으로 본관 1층 건물에 ‘웃터북’이란 이름으로 카페 형식의 축소 개방형 서가를 지자체의 예산 지원으로 만들어 운영했다. 그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책을 읽는 신세대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과 동참하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짧은 재임 기간이었지만, 도서관의 각종 책읽기 행사에 솔선수범하고 야간 행사까지 참여해 격려하며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필자는 퇴임 전 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지혜로운 사서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학교장의 책마차’를 운영했다. 학생들과 주 1회 복도에서 만나 좋은 책 읽기의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책을 읽게 함으로써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이를 위해 매주 월요일이면 서가에서 혼자 일일이 책을 읽어보며 선정한 20여 권을 정성스레 수레에 담아 목요일에는 학생들을 찾아 나섰다. 어떤 학생은 “교장선생님이 추천하는 책이라 안심하고 읽을 수 있어요!” “도서관까지 가지 않고 이렇게 복도에서 책을 빌릴 수 있으니 참 편리해요~”... 등등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학생은 “혹시 철학 분야 책도 있어요?”라고 선호하는 책을 주문했다. 이 경험은 ‘책 읽는 학교’ 만들기는 학교장(교사)의 의지와 실천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이는 또한 학생들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구축해 생활지도, 인성교육으로 연계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내년 문학 등 인문학 관련 예산(281억원)은 올해보다 24% 가량 준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탓에 요즘 국문과 학생들은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는 한국에서 문학을 하겠다는 것은 모두가 육식인 사회에서 홀로 채식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제2, 제3... 한강 작가를 길러내는 토양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책 읽는 학교(가정)’를 만들고 마을 도서관을 활성화하며 서점을 즐겨 찾는 청소년들을 육성하는 교육이야말로 시대적 과업이라 할 것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는 안중근 의사와 “내 인생의 8할은 동네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는 빌 게이츠의 독서론은 다시금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겐 미래가 없다. 정부와 교육 당국의 지원과 학교 관리자와 교사(부모)의 지혜와 솔선수범으로 책 읽는 학교(가정)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