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팽배하다. 하지만 공동체와 연결되지 못하는 개인의 삶은 혼자만의 삶으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교육을 말할 때는 ‘교육공동체’ 혹은 ‘학교공동체’라는 집단의식을 강조한다. 학교교육은 교사집단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해 학교의 다른 구성원인 학생, 학부모(나아가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이른바 학교공동체가 돼야 한다. 실제로 학교공동체가 어떻게 상호관계를 맺고 운영되느냐에 따라 학교교육의 성패가 달려있다. 그래서 학교공동체를 바람직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문화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로써 학교공동체가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학교의 교육목표와 교육비전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학교는 10대에서 60대 초반의 인적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서로의 삶과 영역에 경계선을 긋고 그 선을 넘는 것을 무례하다고 선언하여 도외시하거나 배척하기 쉽다. 이때 사람을 갈라놓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선언적 가치를 담은 명사이다. 예컨대 과거 우리는 ‘반공’이라는 명사를 통해 ‘공산주의는 타도의 대상’이라는 강력한 선언을 했다. 이 선언은 지금도 ‘빨갱이’ ‘좌익(좌파)’ ‘주사파’라는 굴레를 씌워 배척하거나 타도의 대상이다. 이처럼 명사가 그어놓은 선은 강력한 ‘선언적 가치’를 내포한다. 문제는 이 가치가 삶을 철저하게 제약하는 말이 되어 타인과의 관계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삶을 지배하는 수많은 선언을 극복하려면 학교문화에 녹아 있는 ‘명사적 삶’을 거부할 수 있는 대안(代案)으로써 ‘부사적 삶’이 필요하다.
부사는 삶에 수많은 변화와 움직임을 자극하거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서 부사적 삶은 사람과 생명을 향하는 삶을 지칭한다. 부사적 삶은 명사적 삶과는 달리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왜냐면 우리 삶이 지속 가능하고 사람을 향하는 변화와 움직임으로 약동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거울과 함께 그 변화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동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곧 부사적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공동체가 필요하며 여기서는 사람들의 연대와 협력이 빛을 발하게 된다.(정철희, 『교사의 고통』, 2024.)
그럼 잠시 서로 대척점에 있는 명사적 공동체와 부사적 공동체를 비교해 보자. 먼저 명사적 공동체는 현재 우리의 학교를 지배하는 시스템에 가까우며 이는 다양한 삶을 지향하는 것보다는 특정 이념이나 가치의 선언에 가깝다. 학교 내의 수많은 선언적 가치들은 사실 학교 밖에서 유입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명사적 공동체는 획일적 목소리를 강요한다. 예컨대 혁신학교에서 혁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배척되고, 미래학교에서는 스마트 기기를 다루지 못하면 눈치를 받게 되며, 연구중점학교에서는 그 특성에 의해 교사 개인의 가르침을 억제해야 한다.
반면에 부사적 공동체는 그 안에 수많은 목소리가 존재한다. 공동의 개념과 논리가 아닌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한다. 여기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획일적 목소리가 아닌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연결된다. 이른바 선언적 선을 뛰어 넘는 사람들의 연대가 돋보인다. 이는 진정한 교육은 부사적 삶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믿음을 부른다. 결국 학교공동체는 부사적 삶을 통해서 그 효능감이 매우 크다 할 것이다.
학교공동체는 언제나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가능성과 가치를 고려하며 그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연결한다. 예컨대 지역사회의 마을학교는 아이들의 성장뿐만 아니라 지역민을 포함한 마을 공동체 모두의 성장을 꾀한다. 결국 마을학교의 본질은 사람에 있으며 학부모들은 학교의 철학을 이해하고 교사의 헌신과 노고에 공감할 수 있고 자신들이 학교교육의 손님이 아닌 또 하나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로써 자신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선언적 가치들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학부모, 교사 간에는 상호 이해와 노력(헌신)을 존중하고 잘못된 개념과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다. 결국 교사가 아이들의 삶을 기르는 교육이 되려면 학교공동체의 협치가 필요하며 이는 학교공동체 사이에 관계가 소원(疏遠)한 지금이야말로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