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谷 전재학
前 인천산곡남중 교장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교육부 무용론이 담론으로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복잡한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교육부에 질타의 목소리와 함께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정치권이 관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정책으로 단위 학교 자체의 역동적인 자치 행위, 즉 활기찬 자율성을 퇴색시켜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안일과 보신의 소극성을 키웠다.
그 결과 학교 공동체의 협의와 타협, 공동체 의식은 한계에 봉착하고 누군가가 나서 총대를 메고 책임지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이를 상호 간에 눈치 보는 문화가 존재한다. 이는 학교공동체가 교육활동에 소극적인 참여로 이어지고 각종 교육정책의 활발한 협의와 민주적 절차가 결여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권의식은 아직도 희박하기만 하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인 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 그래서 자치단체장이 정부를 찾아 예산을 요구하고 그에 임하는 자세는 “예산을 못 따오면 모두 강에 빠져 죽자”라는 비장한 각오를 유발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돈을 주지 않으면 숙원사업이고 필요사업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방의 현실을 드러낸다. 최근 김포시를 서울로 편입하려는 논의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참으로 기형적인 도시 정책이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식 발상이다.
잠시 웃픈 이야기를 기억하자. 과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을 한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이 귀국한 후에 K리그 감독을 할 때, 선진축구를 배운 감독은 경기에 패배한 선수들을 모아 잘한 점은 격려하고 실수는 분석을 통해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도로 상황을 분석하고 설명할 때 한 선수가 “차라리 빠따로 때려주십시오”라며 호소했다. 창의적 플레이를 하면서 즐기는 축구를 설명하는데 때려달라는 말에 감독은 뜨악했다. 선수들은 패배의 원인에 대한 분석보다는 나태한 정신 때문이니 몇 대 맞고 정신 바짝 차려 다음 경기에 승리하겠다며 ‘빠따’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두고두고 전해오는 일화로 분권의식에 큰 의미를 갖는다. 감독은 분권을 말하고 선수들은 ‘빠따’를 말하는 것은 민주적 자치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오늘의 우리 교육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정치권과 교육부가 교육정책을 일괄적으로 주도하여 시행을 하달하고 학교에서는 이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역 교육청 역시 분권의식이 경직돼 교육부로부터의 공문이나 지시에만 따르는 상명하복과 복지부동은 열린 시대의 적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부딪히는 각종 행정사항에 대해 교육청에 문의하면 담당자는 교육부에 문의해서 알려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도 있겠지만 지나친 경우는 밥상조차 스스로 차리지 못하고 떠먹여 주기를 바라는 자치의식의 결여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단위 학교 역시 상황은 어느 정도 마찬가지다. 매뉴얼과 법령으로 명확히 제시된 사항도 직접 찾아 해결하기보다는 곧 바로 상급기관에 문의하여 시시콜콜 지시를 따르려는 것이 그것이다. 담당자 책상 위에 비치된 관련 책자는 그냥 낮잠을 자고 있다. 이는 학교 자치에 대한 의식의 결여가 아직도 과거의 관례나 실행에 익숙해져 있고 위의 사례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업무를 즐기며 잘 하려는 자치의식의 부재가 잔존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학교 민주화가 더 없이 필요한 요즘이다. 여기엔 교사와 학생, 학부모 역시 분권의식과 자치의 소중한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공부와 실행 의지, 그리고 용기와 행동을 필요로 한다. 학교 관리자는 각종 교육활동에서 충분한 권한을 업무 담당자에게 위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유 리더십’의 활발한 전개도 요구된다. 민주적인 학교 자치는 구성원의 교류와 소통, 공감, 타협, 인내와 집단지성의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 여기엔 관리자의 교육리더십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교육당국은 단위 학교에게 모든 교육활동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제도화하여 실질적인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아직도 과거에 만연한 “빠따‘를 그리워하는 것은 조직을 죽이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소원(疏遠)해진 학교공동체 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학교자치를 크게 키우고 발전을 도모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