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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谷 전재학
前 인천산곡남중 교장

최근 ‘작가정신의 승리’ 표상인 소설가 조정래는 신작 장편소설 『황금종이』를 발표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온통 돈에 빠져 미쳐 돌아가는 대한민국을 아주 리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한때 대한민국 정치의 본산인 청와대에서 매년 정초에 나누는 덕담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부자 되세요”라고 바꾼 주인공이 있었기에 ‘부’에 대한 집착과 ‘부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크게 자극하게 된 배경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종교도, 권력도, 핏줄도, 도덕도 그 앞에선 소용없으며 인간의 생살여탈을 쥐고 흔들며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하는 돈에 대한 적나라한 10여 가지의 일화를 냉엄한 현실에 기초해서 실감나게 밝히고 있다. 돈은 매일 생각하고, 매일 걱정하고, 매일 꿈꾸는 것으로 일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기에 돈에 얽힌 현대인의 의식을 되돌아보며 부에 대한 바람직한 개념을 형성하여 품격 있는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청소년 교육에서부터 궁구(窮究)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얼마 전에 미국의 교육 연구자가 세계 여러 나라 어린이들의 의식을 조사하려고 우리나라에 왔다. 그런데 그 학자는 조사 결과를 보고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돈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은?” 하고 묻는 설문지를 돌렸는데 아이들은 50퍼센트 이상이 ‘부자’라고 썼다. 아이들은 과학자·교사·법관·스포츠맨·연예인 등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부자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그렇게도 많았다.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일종의 기현상이다.

최근 초·중생의 장래 직업 희망 조사에서 ‘의사’ 직업을 크게 선호함을 드러냈다. 그런데 한결같은 이유가 바로 “돈 벌려고”이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최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전국 400개 초·중·고생들을 설문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의 희망 직업 선택 이유가 2018년 조사와 비교해서 3배 가까이 증가한 15.5%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이는 과거의 압도적이었던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10대들의 현실적인 목표를 크게 탓할 수 없다 하더라도 올바른 직업관을 확립하기도 전에 가정과 사회의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일찌감치 재능과 꿈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의 의식은 세계적인 추세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원폴이 2021년 미국 고등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는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자신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실제로 북유럽의 청소년들은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세계 기후 변화’를 염려해 환경운동가를 원한다고 하는 순수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는 한국형 환경운동가인 제2의 ‘그레타 툰베리’는 이 땅에서는 일찌감치 싹을 틔울 수 없다는 우려이다.

그렇다면 우리 10대들은 왜 가슴 뛰는 일보다 돈 잘 버는 일에 열광하게 된 걸까. 여기에는 학교 교육과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의대준비반 학원에 보내고, 학교는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알려주는 데 소홀하다. 공교육 시스템에서 아이들의 적성과 재능이 무엇인지 발견해 그에 맞는 직업 경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학교에서의 직업 교육을 다시금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직업군의 역할이나 보람을 알고 어떻게 이 세계를 이롭게 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를 꿈꾸는 청소년이 되어 그들의 가슴에 용솟음치는 희망을 불어넣는 학교 현장이 되어야 한다. 인구 절벽 시대, 초·중·고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창의적으로 펼치고, 다양한 직업군에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직업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보다 제도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교육개혁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