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谷 전재학
前 인천산곡남중 교장
세계화는 많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에게 큰 폭의 불평등 확대와 임금의 정체를 안겨주었다. 예컨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대부분의 이익을 챙겼고, 하위 50퍼센트는 거의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진보적, 자유주의적 정당들은 이런 불평등을 직접 다루지 않았고 경제의 구조적 개혁을 외면했다. 그 결과는 어떤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시장 주도적 세계화를 받아들였으며 기회의 평등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통해 오히려 불평등한 혜택을 조장했다. 예컨대 인종이나 출신 계층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기 재능과 노력이 허락하는 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회적 상승 담론으로 학력에 의한 능력주의의 신봉을 부추겼다. 이는 결국 소득 사다리의 간격을 점점 더 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엔 특히 미국의 전임 국가 지도자들-클린턴, 오바마 등-이 앞장서 대학 학력에 대한 신봉을 주도했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해법으로 국민을 선도했다.
대한민국은 유사 이래 지금처럼 극심한 빈부격차를 드러낸 적이 없다. 한때 산업화 시대, 개발 과정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사회적 계층 간의 격차를 보여준 적도 있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격심한 빈부의 격차를 가진 불명예스러운 국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아예 출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평등을 안고 살아가는 신세대 젊은이들은 어떻게 그 간격을 메우려 할까?
그것은 교육, 특히 학력주의에의 의존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을 가진 국가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경제침체와 고용불안으로 오늘날 우리 대학의 성패는 졸업생들의 취업률에 의해서 결정되고 이는 곧 명문대의 순위를 판가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교육부와 일부 언론은 이를 당연한 듯 공개하고 심지어 대학 평가의 기초 자료로 삼아 예산 지원과 연계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능력주의자들은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일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부지불식간에 학력주의를 조장한다. 이와 같은 학력의 편견은 능력주의적 오만의 한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능력주의가 국시(國是)가 되면서 엘리트들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을 얕잡아 보고 무시하는 경향마저 나타냈다. 한때 한 명문대 학생은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대접을 안 해주지?”라며 세상을 향해 공개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엘리트들이 대학에 가서 자신의 조건을 향상시키라고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세뇌하듯 말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결국 학력주의를 조장하고 인간으로서의 각자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책임이라 말하기 전에 국가가 담당하여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 주어야 하는 공적인 영역이다. 현재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가 고등학교 전 학년 무상급식과 교육비 지급을 실시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세계의 선진국들은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은 과거부터 국가가 관장하는 주요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결국 교육이 불평등에 대한 해법이라는 주장은 학력주의를 조장하고 정당화시키며 학력 간의 균열을 초래할 뿐이다. 한때 기회의 문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대학 학위는 이제 학력주의자의 특권과 능력주의 오만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교육이 불평등의 해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건전하지 못한 사회적 상승 담론을 부채질하며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이제 우리는 대학 학위가 품격 있는 직업과 사회적 명성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폐기해야 한다. 특히 SKY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는 N수생을 양산하는 고질적이고 망국적인 병폐다. 이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주범이며 비대졸자의 사회적 기여를 폄하하고 사회의 저학력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다. 그리고 그들을 대의 민주주의 정치에서 배제시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성공과 출세 지향의 뿌리 깊은 교육가치를 인간 존엄과 다양성 추구에 대한 품격 있는 교육으로 승화시켜 성숙한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