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
최근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6학년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일이 지난 2023년 7월 18일에 보도되었다.
같은 날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이하 S초)에서 1학년 담임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사실관계가 정확하게 확인되고 있지 않아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보다 앞선 7월 14일에는 유명 정신과 의학박사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에서 경기도 모 초등학교 2학년 학생 한 명으로 인해 교실 전체와 학교가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빠진 사례가 방송으로 보도되었고, 2년 전 같은 학년 바로 옆 반 담임교사 두 명이 6개월 간격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안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연이어 터진 기사들로 교육계와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5년 6개월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 교사는 100명이 넘었다. 사망 사유가 ‘사고’ 또는 ‘기타’로 분류된 교사는 경기도에만 16명이 더 있고, 서울시교육청에서도 최근 5년간 12명의 교사가 우울증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어쩌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교사들이 피해를 입었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 있다. S초 사안이 시발점이 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교육계는 한계 상황에 직면했던 것 같다.
▲아동학대 처벌법과 관련한 학교 현장의 현주소
아동학대 처벌법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이른바 ‘서현이 사건’으로 알려진 2013년 울산 아동학대 살해 사건이다. 당시 8세였던 의붓딸을 계모가 지속적으로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전 국민이 공분했고, 국회에서 발의되어 1년간 빛을 보지 못했던 법안이 통과되는 계기가 되었다. 법안의 핵심은 ‘누구든지 아동학대 정황을 알게 될 경우 수사기관 등에 신고해야 할 의무’를 신설하고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에 대해선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다.
법안 심사는 논의부터 국회 통과까지 2주가 걸렸다. 공청회도 생략되고 간담회로 대체되었다. 아동권리 전문가와 로스쿨 교수만 참여했고 교육계의 목소리와 현장의 의견은 반영될 기회조차 없었다. 교원의 방어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항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이미 만들어진 법은 국회, 중앙정부(부처) 등의 관심사가 아니다. 현장에서 어떻게 정착되든 일단 큰 이슈나 사안이 발생할 때까지는 관심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교원단체나 시·도교육청에서 일부 목소리를 냈다 하더라도 여론화되지 못했을 것이고 법과 제도를 만들 때의 골든타임을 고려하지 못했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도입 취지는 좋았으나, 학교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불완전한 법을 악용하여 일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소수 학부모가 교사나 학교를 무차별적으로 신고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현장을 고려하지 못한 법이 악용될 여지를 제공한 것이다.
▲교사들은 법과 정책,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15년에 가깝게 교육행정, 교육법, 교육정책, 교육제도를 연구해오고 있지만 이 분야는 아직 체계적이지 않으며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교원단체, 시도교육감협의회, 현장교원, 관리자, 교육전문직원, 교육부, 시·도교육청 할 것 없이 비슷한 흐름이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객관적인 데이터나 시대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은 근거 없는 주장만 난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일부 내용만 잠깐 이슈화되고 금방 묻혀버린다.
사안이 발생하면 모든 단체나 기관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려 노력한다. 사안의 원인과 현장에 대한 관심은 나중 일이다. 그렇기에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단체나 기관에서 내놓는 대책에 호응할 수 없고 오히려 분노하게 된다. 의지를 가지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S초 사태에서 보듯, 원인은 있으나 법적‧제도적인 지원은 없고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사안으로 치부된다.
▲교사가 원하는 대로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것인가?
현장의 경험은 소중하다. 교사들이 직접 겪은 현장 경험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장 경험이 전부는 아니다. 특히 법과 제도(정책)는 국회나 중앙정부에서 만든다. 교육계의 의견을 일부 반영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사안들과의 균형이고 국민들의 눈높이이다. 즉, 교육만을 중심에 둘 수 없고 여러 사회적인 사안들과 발맞추어 갈 수밖에 없다.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국민들의 눈높이에 충족될 수 있는 것인지가 관건이다.
S초 사태를 시작으로 그동안 숨겨져 왔던 여러 사안들이 연이어 밝혀지고 있다.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는 것 자체는 의미 있다. 그리고 늦었지만 S초 사태에서 촉발된 법과 제도의 현장성 강화에 대한 측면은 매우 긍정적이다. 앞으로 교사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개선 방향을 같이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든, 교사들이 법과 제도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이 현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S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악성 민원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여 아동학대 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만 이루어져도 다행이고, 일정 부분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상의 동력은 현시점에서 나오기는 어렵고, 각론에서 너무 많은 논란이 있으므로, 여러 단체와 기관이 타협지점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수십 가지 주장을 한다고 절대 수십 가지가 동시에 실현되지 않는다. 법과 제도(정책)는 하나를 바꾸는 데도 수 년(때로는 수십 년)이 걸린다.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것 하나만 개정되어도 학교 현장에 많은 변화가 생길 수 있고, 제2, 제3의 S초 사태를 막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