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졸업 시즌이 끝나고 이제는 입학 시즌이다.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각급 학교는 빠르면 2월 말, 늦어도 3월 초에 입학식을 한다. 초등학교 입학식은 정규 교육이 시작된다는 의미가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에는 검정 교복을 입고 가슴에 콧수건을 달고 입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선생님의 “앞으로 나란히!”라는 구령에 맞춰 줄을 섰던 것이 엊그제 같다. 집에서 응석만 부리던 아이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을 갖게 되는 것이 초등학교 입학이다. 대학까지 16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학생이란 신분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대학 신입생은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넓은 캠퍼스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드넓은 캠퍼스에서 큰 뜻을 세우고 갈고 닦아 사회에 진출할 마지막 단계가 대학이다. 고등학교 때까지와는 다르게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까지 주어지는 곳이다. 수강 신청을 비롯하여 동아리 및 학생회 활동 등을 스스로 찾아 해결해야 한다.
입학식은 새로움과 대면하는 의식(儀式)이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 새로운 환경과 만나 신고하는 의식이다. 입학식을 거치면서 각급 학교 학생의 일원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성경』 「마태복음」 9장 17절에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하게 된다.”라는 말이 나온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과거의 낡은 것은 과감히 버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주를 담을 때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았다고 한다. 하지만 딱딱한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오래 담아 두면 발효 과정에서 독한 가스가 생겨 터져버리게 된다. 그래서 새 술은 반드시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태와 관습을 고집하면 새로운 술을 담을 수 없다. 입학하는 학생들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순자(荀子)』의 「자도(子道)」편에 ‘남상(濫觴)’이란 말이 나온다. ‘남(濫)’은 ‘넘친다‘는 뜻이고, ‘상(觴)’은 ‘술잔’이란 뜻이니, ‘술잔에 넘칠 정도의 적은 물’이란 의미다. 무릇 모든 일의 시초는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큰 강도 “처음 흘러나올 때 그 근원은 술잔을 띄울 수 있는 정도의 강물에 불과하다.” 인생에 있어서 입학은 ‘남상’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물이 더해지면서 마침내 큰 강을 이루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스승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필자는 재직 시 대학 신입생들에게 자작시 <살다 보면>을 소개하고 음미하도록 했다.
봄날에 잎 안 난다고 설워하지 말아라
느긋하게 참으면서 몇 날을 기다리면
초여름 입 돋아나는 대추나무 되리라
봄날에 꽃 안 핀다고 슬퍼하지 말아라
비바람 폭풍우를 온몸으로 견디면
삭풍에 고고히 피는 동백꽃이 되리라
피었다 이내 진다고 분노하지 말아라
그렇게 한세상을 두리둥실 살다 보면
석 달 열흘 진홍 꽃 피는 백일홍이 되리라
일찍 피는 꽃도 있고, 늦게 피는 꽃도 있다. 개화 시기와 관계없이 꽃은 아름다움이 다르지 않다. 잎과 꽃이 늦게 핀다고 슬퍼할 것도 분노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때가 되면 알아서 예쁜 꽃을 피우는 것이 자연이다.
입학하는 학생들도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순응해야 한다. 일찍 능력이 발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계획을 세워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능력이 발휘되고 뜻이 이루어질 때가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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