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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이고, 또 무엇을 하는 곳이어야 할까?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물음은 그러나 보는 시각에 따라 매우 다양한 답을 할 수 있는 다층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와 교사의 관점과 학생 자신의 관점이 각각 다를 수 있고, 사회 전체에서 학교에 기대하는 것이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점에서는 놀라울 만큼의 일치가 존재한다.

2020년 국가교육회의가 학부모와 교사, 학생, 일반 시민 등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학교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도 그런 일치의 사례다. 대상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학교가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존중과 배려를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답에서는 일치했다. 학생들은 그것에 더해 자신의 진로를 폭넓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학교가 극심한 경쟁 속에서 점점 더 살벌한 곳이 되고 있고 그 결과 교사와 학생들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조사 결과는 학교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기대가 무엇인지를 헤아려보는 소중한 자료다. 우리 삶과 사회가 때로 제한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 근원적인 차원을 들여다보면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고 학교는 바로 그런 설계를 뒷받침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깨침이 뇌과학 등의 연구성과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이기성만을 강조하면서 각 개인의 배타적이고 제한적인 시험 점수 올리기만이 최선의 교육이라는 잘못되고 비현실적인 관점이 만연해 있는 셈이다.

학교 교육은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인성교육(人性敎育)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자세와 역량을 길러주는 시민교육(市民敎育)을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이 두 교육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그 중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스스로의 삶에서 주인으로 살아내기 위한 과정에는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사회성과 윤리성이 반드시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현대 교육사에서는 이 두 교육이 서로 충돌하거나 대립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비극의 역사가 펼쳐져 왔다. 인성교육은 효(孝)나 예(禮) 같은 전통적인 덕목을 주입하는 보수적인 교육으로, 시민교육은 노동이나 공정과 같은 사회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진보적인 교육으로 대비시키는 현상이 일상화된 것인데, 이는 박근혜 정권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문재인 정권에서 교육부에 민주시민교육과가 설치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교적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인성교육은 시민의 인성(人性)을 지향점으로 삼아 펼쳐져야 한다는 점에서 시민교육과 분리될 수 없다. 수직적인 관계를 전제로 형성된 예나 효 같은 전통적인 덕목들도 시민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망 속에서 재구성되어야만 비로소 교육의 내용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유나 정의(正義) 같은 시민적 가치들도 함께 어우러져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근원적 속성을 전제로 할 때라야 온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시민은 고립되고 이기적인 존재자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권 들어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를 ‘인성체육예술교육과’라는 박근혜정부의 혼란스런 명칭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인성교육을 시민교육과 분리된 것으로 전제하고, 그동안 강조되어온 시민교육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명칭이 부담스럽다면 그냥 ‘시민교육’이라고 해도 된다. 스스로의 삶에서 주인이 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시민이 되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우리 시대 교육의 기본 명제가 경시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럴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우리 학교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고, 그런 학교만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