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만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었는데도 출근길의 지하철 승객들은 몸을 부딪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목적을 갖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만남’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문득 사물놀이가 떠올랐다. 사물, 즉 꽹과리·북·장구·징은 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인간의 만남도 사물에 견줄 수 있다.
첫째는 꽹과리 소리 같은 만남이다. 꽹과리 소리는 요란하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쇳소리가 난다. 꽹과리 소리를 들으면 시끄럽다. 흔히 지인과의 만남이 이에 속할 것이다.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면 진솔한 대화보다는 각자 자신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헤어진 후에는 대화의 내용보다는 공허함만 남는다.
둘째는 북 또는 장구 소리 같은 만남이다. 북과 장구는 두드리는 순간에만 소리가 나고 오랜 시간 울림이 없다. 사방이 가죽이나 목재로 막혀 있어서 폐쇄적인 인간관계에 견줄 수 있다. 사무적인 일을 보기 위해 관공서 등에 갔을 때 거기에서 관계자와의 만남이 이에 속한다. 만남의 당사자들은 각자 자기 일을 처리하면 그것으로 만남은 끝난다.
셋째는 징 소리 같은 만남이다. 징은 금속 타악기로, 쇠를 울려서 소리를 내지만 부드러운 음색으로 오랫동안 울려 퍼진다. 징은 천을 뭉툭하게 감은 채로 치기 때문에 울림이 길고 은은하다. 울림이 있는 만남은 소중하고 진정한 만남이다. 만나는 동안은 물론이고 헤어지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간다. 이러한 만남이 곧 인간적인 만남이요 상생의 만남이다. 공자와 자로,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의 만남은 징 소리 같은 만남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종교철학자인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자신의 저술 『나와 너(I and Thou)』에서 인간관계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세상에는 ‘나와 너’의 관계와 ‘나와 그것(I and It)’의 관계가 존재하는데,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도구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대상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일시적이고 기계적인 관계이다. 하지만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 인격으로 만나는 관계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나’와, 대체할 수 없는 ‘너’가 깊은 신뢰 속에서 만남이 지속된다. 부버가 말하는 ‘나와 너’의 관계는 ‘징 소리’ 같은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 교육자와 학습자의 만남이 ‘잘못됨 만남’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욕설과 폭행·고발 등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순신과 원균의 ‘잘못된 만남’을 연상케 하는 교육 현장의 풍경들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원만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저 자기 보호에 시간을 보낼 뿐이다. 가르칠 내용이 있는 교육자와 그것을 배워야 하는 학습자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만나서 그저 ‘주고받는’ 사무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은퇴한 교육자로서, 오늘의 교육 현실이 궤도를 이탈한 열차와 같아 우울하기만 하다.
교육은 ‘징 소리’ 같은 울림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울림은 고사하고 불협화음만 들리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교사가 학생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고, 학생은 교사를 신뢰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를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각자의 위치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공자의 가르침이 시대를 초월하여 마음에 와닿는다. 학생은 학생답고, 교사는 교사다워야 한다는 충고로 들린다. 학생이 학생답지 못하고, 교사가 교사답지 못할 때 교육은 방향을 잃게 된다. 올바른 교육은 ‘징 소리’ 같은 울림이 있는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