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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키를 훌쩍 넘는 높다란 말 등에 앉아 아이가 손을 흔든다.

“무서웠는데 타보니까 재미있어요. 무섭다고 안하면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말이 무서워 다가가지도 못했던 직전의 모습이 무색하게 쫑알쫑알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늘어놓는다. 무심한 듯 덤덤하게 말하는 아이의 입가엔 말투와 다르게 환한 무지개가 서서히 떠오른다.
그래,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맞기도 하는 거야.

지난해 한 아이를 만나 나의 마음은 일년 내내 비를 맞았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아이는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 놀라운 전략을 택했다. 아이는 무패의 전적을 가졌지만 도전의 설레임과 성취의 기쁨을 느낄 기회조차 갖지 못해 보였다. 틀리는게 두려워 곱셈을 거부하고 글 밥이 많은 글을 끝까지 못 읽을까 책을 펴지 않았다. 지는 것이 싫어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를 피하고 혹여 원하는 답이 아닐까 대답하길 거부했다. 처음에는 소심한 아이의 자기 방어라 가볍게 여겼지만 아이의 거부 횟수가 많아지고 그 반응이 격해지면서 나 역시 낙관은 비관이 되고 기대는 실망이 되기를 반복하였다. 아이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낸 하루가 지나면 온종일 비를 맞으며 돌아다닌 듯 나의 몸과 마음은 많이도 지쳤더랬다. 그 맞은편에서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다그치는 선생님 때문에 아이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호기심에 한걸음 다가섰다가 실패의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며 아이의 속은 몹시도 복잡했을 게다.

이렇게 서로 자신들만의 비를 맞으며 나도 아이도 점점 지쳐갈 때 함께 비를 맞아주는 이들이 생겼다. 매주 방문하여 아이와 나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시는 상담 선생님 덕분에 아이도 제법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 역시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이의 일상을 함께 관찰하며 격려와 지도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들 역시 나에겐 마음의 비를 피할 든든한 우산이 되어 주셨다. 그렇게 점점 비가 개고 있었다. 긴 장마의 터널을 지나오니 아이에게는 두려움 끝에 손을 내미는 용기가 생겼고 나에겐 그 손을 기다릴 인내심이 생겼다. 국어책에는 한 줄의 글이 더 쓰여지고 틀린 수학 문제에 속상한 마음을 이겨내는 주문같은 말 한마디를 지니게 되었다. 여전히 지는 것은 싫지만 같이 노는 즐거움에 더 끌리고 어느 새 떨어질까 무서워 타지 않겠다던 말 등에 올라탄 아이. 걱정과 두려움, 좌절과 실망이라는 빗속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간 아이는 비를 이겨내고 무지개를 본 기쁨을 느끼지 않았을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비구름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구름은 가랑비를 내리기도 하고 소나기를 퍼붓기도 하며 때로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를 혼자 맞을 필요는 없다. 누군가 슬며시 우산을 건넨다면 함께 쓰고 비가 그치길 기다릴 수 있다. 그렇게 나 역시 나를 만날 또 다른 아이의 우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간혹 어깨 한쪽이, 바짓가랑이가 젖을 수도 있겠지만 함께 있어줄 누군가는 그마저도 잊게 할 따스함이 되어준다. 20년을 학교에서 보내며 비가 오는 날도 많았더랬다. 크고 작은 비를 이겨내며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함께 비를 맞아준 고마운 이들이 있어서이다. 비가 개인 후 내 마음에,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무지개가 비를 잊게 해서이다.

어제의 비를 떠올리며, 그리고 그 비를 함께 해준 이들을 생각하며, 어디선가 비를 맞고 있을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난다면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비를 맞아주리라 다짐한다.

그래,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맞기도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