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방란 한국교육개발원장
우리 사회에 중도가 줄고 선명한 극단으로 나뉘는 경향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교육부문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견 보수와 진보가 뚜렷이 나뉘는 것으로 보이나 잘 들여다보면 공통의 지향 지점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공교육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획일적 표준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개인 맞춤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 개별화 교육을 지지하지만 협력과 공동체성 함양도 소홀할 수 없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어느 편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보더라도 진보와 보수 진영의 차이는 선명하지 않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정책은 보수 정부에서 추진되었지만 한 학기 이상 일제고사를 보지 않고 교수-학습의 혁신을 꾀하였다는 점에서 그 지향은 진보적 관점과 더 가까워 보인다. 학습자의 개별 선택 확대를 전제한 학점제 정책의 지향은 보수적 관점의 기반이 되는 신자유주의적인 것으로 보이나 진보 정부에서 앞서 추진하였다.
정작 엇갈리는 것은 지향하는 가치보다 이해관계이다. 고교학점제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직유연화에 대한 불안이다. 학생 수가 감소하여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 운영하는 형태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나 자격제도 유연화나 교사대 통합은 이해관계 충돌을 일으킨다. 초저출생 시대에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유보통합이나, 초등돌봄 체제 구축도 이해관계의 충돌이 예견된다. 대입에서 수능 반영 비율 논란 이면에 집단 간 유불리에 따른 갈등이 놓여 있다. 제도와 정책의 발전에 따라 일반자치와 교육자치 간의 연계를 넘어 통합적 접근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권한과 자원 배분 등을 둘러싼 갈등이 예상된다. 산업화 시기에 형성된 교육체제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안정화되어 있어 개혁을 꾀하고자 하면 곳곳에서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부에서는 갈등을 피하고 정권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과제가 뒷전에 밀리게 된다. 잦은 정책의 변화는 교육현장에 혼란을 주며, 국민들의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지고 피로도는 높아진다.
지난 달 출범한 새정부의 국정과제 선정을 위해 인수위에서는 저출생, 지역소멸 위기, 수도권 쏠림, 디지털화의 진전, 격차의 심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교육개혁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곳곳에 잠복된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을 실감하였을 것이다. 국정과제에 포함된 것 중 유보통합, 돌봄 확대, 대입개편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지방) 대학 간의 재정투자 우선순위나 규모 면에서도 갈등이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방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추진하여야 할 개혁과제를 살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회적 협의는 우선적으로 할 만 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교육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책에 대한 참여 의지도 높다. 교육문제는 온 국민의 관심사이다.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협의, 공론화의 방법은 다양하다. 사회적 협의는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학습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안에 따라 적절한 절차를 마련하여 함께 숙의하며 방향을 설계하고, 그 방향으로 진전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제도를 둘러싼 이해관계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회적 협의는 투표를 통해서만 아니라 정책에 대한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이며, 정책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새 정부에서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해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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