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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에 있어서 능력주의(meritocracy)는 학생의 능력 및 재능과 같은 성취적 요인에 의해 입학 여부가 결정되어야 하고, 학생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귀속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념이다. 능력 있는 학생이 대입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 능력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주의는 그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증대되어 학사학위 소지 여부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특히 명문대학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부모는 자녀의 인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이리하여 부모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적극적으로 자녀의 삶에 개입하게 되어 부모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도록 자녀의 행동을 간섭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고학력·고소득의 일부 특권층 부모에게서 두드러진다. 일류 대학, 일류 학과에 고소득층 자녀들이 많다는 것은 우연한 사실이 아니다.

2020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같은 해 세칭 SKY대 의대 신입생의 75%, 로스쿨의 경우 60%가 고소득층 자녀였다. 최상위 대학의 최상의 학과,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향하는 관문에 이미 고소득층 부모를 둔 자녀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것이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의사나 법조인이 되기가 힘들어졌다.

일부 특권층 부모들은 자녀를 일류 대학, 일류 학과에 입학시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그들은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자녀들을 좋은 대학·학과에 입학시키려는 유혹에 빠진다. 특권층 부모들은 부정이 아니더라도 거액의 돈을 들여 입시 컨설팅을 하거나 고액 과외, 입시에서 요구되는 각종 스펙 자료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이리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부모 찬스’, ‘아빠 찬스’라는 말이 일반화되었다. 대학입시에 한정해 볼 때, ‘부모 찬스’가 표면화된 것은 2019년이었다. 당시 조국(曺國)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에 얽힌 이야기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이번에는 새 정부에서 일할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아들과 딸이 의과대학 학사편입학 문제가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언론은 장관 후보자의 자녀가 ‘아빠 찬스’로 편입학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여당 의원들은 잘못된 인사라며 후보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고위층 자녀의 대학 입학에 대해 전수조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심히 궁금하다.

대학입시에서 고위층의 부정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은 입시제도의 탓이 크다. 개인의 재능이나 능력에 따라 합격 여부가 가려져야 하는데, ‘다양화·특성화·자율화’로 포장된 현재의 입시제도는 능력주의를 실현하는 데 허점이 많다. 복잡한 전형 요소, 자기소개서를 비롯한 각종 스펙과 관련된 자료 요구 등으로 채점자의 주관적 관점이 작용하는 평가를 통해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현행 입시제도는 학생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능력’이 개입될 여지가 다분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술로 유명해진 미국의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덜(Michael J. Sandel)의 말대로, 부정한 입시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정하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공정을 가장한 부정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다양화·특성화·자율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이는 학생의 성적으로 대표되는 능력 요인에 의해 입학이 결정될 때 가능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비판론자들은 사교육을 우려한다. 하지만 현행 입시 제도는 사교육은 물론 공정성까지 확보하기 어렵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선발하는 정시 모집 비율을 확대하겠다.”라고 공약했고, “미래의 교육 수요와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대입제도를 마련하겠다.”라고도 했다. 무엇보다도 공정성이 확보되어 ‘부모의 능력’이 끼어들 틈새를 틀어막는 새로운 대학입시 제도가 나오길 기대한다. 능력주의의 실현은 공정사회로 가는 첫 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