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인선

서울 숭실중학교 사서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따뜻한 봄 햇살이 교정을 내리쬐고 겨우내 숨어있던 새싹들이 움트기 시작하면서 가지에 나란히 붙어 있는 연초록의 몽우리들이 뭔가 새로운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아직 초등학생 티에서 벗어나지 못한 1학년 신입생들의 모습이 흡사 이와 같다. 여린 몽우리들처럼 약해 보이지만 곧 커다란 꽃망울을 피울 1학년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대감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나의 기대감에 우리 학생들이 부응해서 여전히 코로나로 힘든 상황이지만 도서관에 와서 책도 열심히 읽고 독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선후배 간에 친목도 다지고 체계적인 책 읽기를 통해 자신의 진로를 찾아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학교 도서관과 친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 학교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던 학생들을 보면 상급학교에 진학해서도 여전히 책 읽기를 즐기며 대학 진학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보아왔다. 우리 학교의 경우, 도서관 연례행사로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이 도서관 행사에 함께 참여하여 재학생들의 소그룹 토론을 진행해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진학 상담이나 소소하게는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재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학생들은 자신도 졸업 후 후배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꼭 참석하겠노라고 약속한다.

많은 학생이 학교 도서관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서관에서는 학생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통해 도서관 문턱을 낮추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에 치여 사는 학생들에게는 학기 중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것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방과 후에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가 점점 줄어들고 한 달에 한두 번 모이는 동아리 활동조차도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서 밤늦게 줌으로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비교적 여유가 있는 방학 기간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지만 도서관 개방 시간은 한정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서들의 방중 근무가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학 중에 학교 도서관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학교 밖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 교육청 소속 학교 도서관은 굳게 문이 닫혀 있다. 사서가 나올 수 있는 날짜는 1년 중 30일(주휴 포함)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방학 중에 도서관을 방문했다가 문이 닫혀 있어 낭패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방학 중 개방 날짜를 미리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방학 때마다 겪는 곤란한 상황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들은 대부분 전문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이다. 하지만 이들은 365일 근무자가 아니기 때문에 방학 중에는 정해진 날짜에만 나올 수 있고 방학 중 급여 또한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하고 일당으로 받는 비정규직이다. 전문직 사서가 생계형 일자리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도서관의 운영을 맡은 주체로서 도서관을 총관리하며 학생들은 물론 교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그 누구보다 애를 쓰고 있다고 자부한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도서관 디지털화를 위해 1500만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학교 도서관에 내려보냈다. 자동대출반납기를 비롯하여 도서관에 필요한 전자기기들을 구매하면서 정말 맘껏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넣으면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산이 없어서 사서 365일 근무 전환은 해줄 수 없다 하면서 장비구축에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은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축하여도 학교 도서관의 발전은 사서의 노력 여부에 많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사서로서 자긍심을 갖기 위해서는 365일 근무가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방학 중에도 안정적인 급여를 보장받고 도서관에 집중할 수 있는 체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럼 자연히 우리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방학 중에 도서관 문이 닫혀 발걸음을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