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교육학박사, 시인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생명과학Ⅱ를 응시한 수험생 중 일부가 해당 과목 20번 문항에 오류가 있다며 이 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평가원은 문제의 오류는 인정했으나 답을 구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며 하나의 답을 정답으로 처리했다. 이에 해당 수험생 일부가 행정소송까지 제기하여 법원에 가서야 오류가 인정되어 전원 정답 처리하는 일이 일어났다. 전문가들 역시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의과 학과장인 김종일 교수는 지난해 12월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100% 오류라며 평가원의 잘못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례는 학생들에게 자칫하면 평가원이 틀린 문제를 낼 수도 있고, 그 결정은 웬만하면 뒤집히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길 수 있다.”라며, “특히 이 과정에서 어른들이 어린 학생에게 심어주는 불신은 수능 성적을 다시 매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우리 사회에 끼치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출제 오류 논란으로 입시 일정이 연기되는 등 혼란이 야기됐다. 가뜩이나 초조한 수험생들에게 또 하나의 고통을 안겨 주게 된 것은 기성세대들이 부끄러워할 일이다. 대학에서는 빠듯한 입시 일정으로 합격자 발표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수능 출제 오류 논란으로 수험생은 물론 고등학교, 대학 등 대학 입시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번 사건으로 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수능의 출제 오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학년도에 언어영역에서 처음으로 오류가 발생한 이후 2022학년도에 이르기까지 7개 학년도(2004, 2008, 2010, 2014, 2015, 2017, 2022)에 걸쳐 9건의 오류가 있었다. 2015(생명과학Ⅱ, 영어), 2017학년도(한국사, 물리Ⅱ)에는 각각 2개 과목에 걸쳐 오류가 있었다. 과목별로는 물리Ⅱ와 생명과학Ⅱ(각 2회), 지구과학Ⅰ, 언어, 영어, 한국사, 세계지리(각 1회)로 주로 과학탐구 영역(55.6%)에서 가장 많은 오류가 있었다. 출제자들이 난도(難度)를 높이기 위해 본래의 수능 목적과는 거리가 먼 복잡다단한 문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수능은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의 취지나 목적과는 달리 변질되었다. 1993년 8월 20일에 처음 치러진 수능은 암기 위주인 학력고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비정상적인 교육 풍토를 쇄신하려는 의지가 담겼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출제 오류와 난도조절의 실패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 수능의 창시자이자 현행 수능 체계의 개발을 이끈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사람이면 능히 맞힐 수 있는 문제를 내야 하는데, 변별력을 높이고, 대학 입학의 당락을 결정하는 자료로 활용되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라고 지적하면서 수능 무용론을 제기한다.

우리나라의 수능과 유사한 미국의 SAT는 수능처럼 단기간에 출제하지 않고 평상시에 문제를 만들고 전문 연구원들이 10가지가 넘는 검토 과정을 거친 뒤 문제로 확정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극히 낮다. 우리나라는 해당 과목의 교수나 교사들이 출제와 검토를 하지만, 어떤 과목의 내용을 많이 안다고 해서 좋은 문제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제에 관한 전문 인력이 투입되지 못하는 것이 출제 오류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

본래의 취지를 살리고, 출제의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방향에서 수능 체제를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해당 분야의 과목 교수나 교사들이 단기간에 출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출제를 위해서는 ‘측정 및 평가’ 자체에 대한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해당 교과목과 관련한 지식만으로는 원래의 수능이 추구했던 방향으로의 출제가 어렵다. 과목에 대한 지식과 함께 평가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장기간에 걸쳐 출제와 검토를 반복하도록 함으로써 단순히 오류 논란이 없도록 하는 차원을 넘어 문항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높여야 한다. 선택 과목에서 출제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해당 교과를 선택한 수험생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관계자들은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