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실

전 인천시교육위원회 의장

참 추운 겨울이었다.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2월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집 한 채 없던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시따지 고개 너머 지금의 고가교가 있는 인하대학교 부근은 바람 한 점 막을 수 없는 벌판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곧 인천에도 대학이 생긴다”고 말씀하셔서, 남루한 옷차림의 초등학교 6학년 일행은 중구 답동에 있는 학교에서부터 제대로 난 길도 없던 독갑다리를 지나 낙섬 가기 전 수인역을 거쳐 걸어갔다. 그 초등생들은 걸어가면서 “나중에 열심히 공부해 꼭 대학에 입학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그 대학이 바로 지금의 인하대다. 인하대 기공식에 맞춰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가 지나는 길목에서 친구들과 같이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던 때가 엊그제 같다. 대학 한 곳 없던 인천에 번듯한 대학이 들어서며 인천의 어린 학생들은 대학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고, 인천의 자존심이자 자랑으로 여기게 됐다.

당시만 해도 인천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집안 형편이 여유로울 경우 서울에서 자취하거나 가정교사로 얹혀살며 학업을 이어갔다. 나머지 대다수는 인천에서 서울역까지 기차로 1시간 20~30분가량 이동한 뒤, 시내버스로 환승해 학교까지 통학을 했다. 아침, 저녁 시간대엔 기차 배차 간격이 1시간 정도였고 낮엔 1시간 30분 정도였다. 아침, 저녁 통근시간대엔 학생뿐 아니라 서울로 장사나선 아주머니들의 생선 등 각종 화물로 열차칸이 가득찼다. 서울로 올라갈수록 탑승객이 불어나 말 그대로 교통지옥이었다.

당시엔 일선 초등학교에서도 기성회비(수업료)를 마련 못해 많은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좀 컸다는 동네 형들은 가장 규모가 큰 중앙시장이나 양키시장에서 일하거나 건달 비슷하게 놀거나 했고, 동네 누나들은 만석동 방직공장이나 버스 차장으로, 일부는 송현동 술집 접대부로 일하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인천에서도 배움을 이어갈 수 있는 대학이 생겨나 인천시민들은 부러워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필자의 모교인 한 고등학교는 3학년생 200여 명 중 50여 명 이상이 인하대로 진학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공대 진학 희망자들은 인하대를 선호했다. 그런 인하대가 최근 교육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평가에서 탈락하자 인천이 충격에 빠졌다. 인천 명문대학으로서 자존심을 세워주었기에 인천에 대한 자존심과 이미지가 손상되면서 인천시민들은 인천의 정치역량에 대해 실망감과 함께 주인의식이 없음을 토로하고 있다.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해마다 대학 신입생이 줄어들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지방의 대학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혹자는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한 타살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혹 다른 이들은 지방대학을 서서히 안락사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도 평가한다. 만약 영남이나 호남에 있는 인하대 정도 규모의 대학이었다면 과연 이런 평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혹여 인하대 설립자를 의식한 이념적 학살은 아닐까. 등등의 추측성 주장도 난무한다.

인천시민들이 지역대학과 함께 지역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자녀들의 미래교육을 위해 힘을 모아 대학 구성원들의 주인의식에 대해 말하면서, 대학 설립자의 동상이 아직도 창고에 방치된 현실을 외면한 채 대학 구성원들이 과연 대학 발전에 힘을 모을 수 있을까.

물론 대정부 관계에서 학교법인의 힘겨움이 존재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국의 많은 지방 사립대학들은 교육부의 재정 지원과 감사, 행정정보를 얻기 위해 교육부 퇴임 고위공무원을 총장이나 대학본부 요직으로 모셔오는 탈 교육적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인하대도 좀 더 일찍 교육부 관료를 총장 등으로 초빙해 난국(?)을 극복했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는 지역원로들도 있다. 교육은 교육 그 자체만의 잣대로 평가되면 좋겠다. 아울러 인천출신 정치실세들의 역할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