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유, OO이 왔어요? 와~ 어서와!” 환영 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다소 호들갑스런 아동맞이로 언어치료 수업이 시작된다.

아이가 착석을 하면 바로 손소독을 해준다. 이미 닦은 책상도 한 번 더 닦아본다. 지난 몇 년간 몇 번의 전염병 사태를 맞으면서 생긴 습관이다. 아이에게 잘 지냈는지 학교는 갔다 왔는지 이런 저런 안부를 묻는다. 탁상용 달력을 보여 주면서 오늘 날짜와 날씨를 확인한다. “어? 10월이 끝났네. 이것 봐. 이제 11월이야. 이제 한 달, 두 달, 이렇게 두 달이 지나면 올해가 끝나.” “올 때 뭐 타고 왔어?” “선생님은 뭐 타고 왔게? 물어봐줘” 언어인지와 대화기술이 부족한 아이를 위해 현재 학습 중인 어휘와 표현을 사용하여 대화에 적용을 해본다. 이렇게 루틴처럼 해오는 일련의 사전대화가 끝날 무렵 학령기 아동에게는 반드시 묻는 질문이 던져진다. “오늘 급식 뭐 나왔어?”

오늘따라 아이는 급식 메뉴를 잘 기억해 내지 못한다. 이유가 있다. 안 먹는 음식이 많이 나왔구나. 아이로부터 대답을 끌어내지 못했지만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태블릿으로 학교를 검색하여 들어가면 학교 홈페이지에 오늘의 식단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메뉴를 확인해주니 아이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니나 다를까 편식이 심한 아이가 입에 대지 않는 메뉴가 많다. 어제 식단도 찾아본다. 내친 김에 내일 메뉴도 미리 알아본다. 아이는 이미 어제 오늘 내일을 이해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오늘 일과를 되새겨 보는 것조차도 어려워하던 아이였는데 언제 이렇게 성장했는지 기특하기만 하다.

문득 태블릿 화면에 꽉 있는 먹음직스러운 식판 이미지를 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이만큼 유용한 시청각 자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어제 오늘 뭐했는지 하루 일과를 돌아보고 기억한 것을 산출하는 것을 지도하려면 미리 엄마에게 아동의 일과를 물어보아야만 했다. 하루 일과를 기억하고 산출하는 과정이 선행학습이 되면 시제부사의 이해와 표현지도로 이어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를 통한 사전 정보 입수가 매회 이루어지기란 쉬운 일은 아니라서 효율적인 방법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상급식이 전면화되고 학교 홈페이지에 식단이 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동이 어제 오늘 무엇을 했는지 사전에 정보를 알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급식은 명확히 어제와 오늘을 구분시켜주는데, 학교 홈페이지에서 식단정보를 바로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동이 제대로 기억하고 표현했는지가 바로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이다!

급식의 식단정보는 대화거리가 되어준다. “이걸 먹었다고? 안 매웠어?” “너 이거 좋아하는구나! 나도~” 입맛 호불호와 관련한 대화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거부감을 감소시켜준다. 국을 절대로 먹지 않던 아이에게 한 숟가락 먹어보고 맛있는지 확인해보자고 했더니 며칠 뒤에 소고기무국을 먹었다고 자랑했다. 이제는 국이름까지 정확히 말한다. 예전에는 밥, 국, 김치 정도가 아이가 아는 음식명이었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식단표를 스스로 들여다보게 되었고 이것은 나아가 시간표, 하루 일과, 향후 일정 등에까지 인식의 폭을 넓어지게 한다.

식단표는 읽기와 발음수정을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익숙하고 자주 나타나는 낱말들이 많아서이다. 되짚어보니 급식식단표 하나로 얻을 수 있는 효과들이 실로 굉장하다.

그런데 꼭 급식이어야 할까? 아동의 일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학교생활과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연결고리가 급식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렇게 학교현장과 바로 소통이 가능하다면 굳이 급식이 아니어도 된다. 아동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해와 표현을 아동과 일대일로 좁은 치료실 안에서 진행되는 40분 동안 끄집어내 지도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급식 외에 또 어떤 시스템이 부모나 학교 선생님과 끊임없고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휴대폰에서 문자 수신을 알려온다. 언어재활사 학교 의무배치를 위한 관련 법률안 개정에 대한 의견을 동록해 달라는 협회의 문자내용이다. 이것 또한 그런 소통 시스템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