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등학교 교감

성질 급한 한국 사람답게 오늘도 고등학생들은 묻는다. “선생님, 제가 공부를 시작하기에 지금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요?”라고.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난감하다. 속으로는 한없이 측은하고 답답하지만 드러내놓고 기를 꺾거나 타박할 수 없다. 무엇이 그리 성급하게 평생 해야 할 공부에 조바심이 나서 이리 걱정 아닌 걱정을 사서 고생하는 것인가? 혹시 이것이 학생에게 심리적인 장애를 유발하여 일찍부터 학습의 포기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문제는 단 하나, 단지 대학 입시 때문이다. 이럴 때는 무어라 대답해 주어야 할까?

매년 학년 초에 고3 학생들은 스스로 걱정에 땅이 꺼진다. 특히나 시기적으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도전하려는 입장에선 자기학대에 가깝다. 마치 저마다 노예 집행관이 내재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고3 교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저학년의 교실에서도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자는 학생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나 작년 한 해 비대면으로 온라인 수업 시간이 많았던 탓에 학교 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은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교사를 응시한 채 빛이 난다. 그뿐이랴. 야간에 스터디카페는 열기로 달구어져 있고 책을 향하는 눈에서는 광채를 띤다. 소위 학생들의 안광(眼光)이 형광등보다 훨씬 강하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속엔 저마다 늦었다는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으니 어찌 그 안과 밖을 구분하기 쉬울까.

학생들은 진리를 배우면서도 거짓말을 욕망한다. 자신이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해 줄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듣고 싶은 대로 말해 줄 교사나 친구를 원할 뿐이다. 그래서 교사는 온갖 달콤한 말로 거짓말의 달인으로 변신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지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더 늦게 시작하고도 역전시킨 사람이 많단다”,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거란다”, “힘내, 넌 할 수 있어” 등등이 그것이다. 학생들은 늦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긴 두렵고, 초라해질 자신을 마주하긴 싫고, 뼈아픈 깨달음은 얻고 싶지 않고, 얼마 못 가 또 도돌이표처럼 느슨해지고 나태해질 자신을 너무도 잘 알면서, 이번에도 흐지부지될 거라는 걸 잘 알면서, 그저 모르는 척 묻는 것이다.

이렇게 질문을 하는 학생들에겐 하나의 처방이 존재한다. 점수 차이든, 능력 차이든, 진도 차이든, 스스로 다 돌파하겠다는 각오가 그것이다. 소위 배짱과 뚝심 말이다. 이것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담겨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 누가 뭐라 말해도 자신이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어떠한 처방이 있을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니 무엇보다도 왜라는 이유를 알기 전에는 행동의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내적 동기 유발이라 하던가. 가끔 좌절할 때도 있고 속상할 때가 있어도 탈탈 털고 일어나 다시 힘껏 달리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그 유명한 야구인의 말처럼 행동하는 사람만이 결국 승자가 된다. 이를 알기만 하면 결코 늦은 것은 없다. 바로 이를 직시하게 하는 교육만이 올바른 처방전이다.

공부의 본질은 ‘경쟁’이 아닌 ‘성장’이다. 즉,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다. 현재 공부의 발목을 잡는 것이 무엇이든 최고의 자신을 만들어 낼 놀라운 기적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데서 찾아온다. 학생에게 늦은 것은 없다. 절실한 학생은 결국 강해진다. 마음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이른바 심리적 심폐술은 바로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다. 오직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는 마음 하나면 된다. 막상 해보면 할 만한 것이 공부다. 공부의 심장이 미친 듯 뛰는 것은 이렇게 시작된다. 공부는 진짜 재밌는 게임이다. 결코 늦는 것은 없다. 포기하고픈 자기 마음을 이기기만 하면 진정한 공부의 달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