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하 경기스마트고 교사

올해도 어김없이 특성화고 교사들은 신입생 모집을 위해 인근 중학교로 분주하게 홍보출장을 다닌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경기도 시흥스마트허브 근처에 있는 공업계 특성화고이다. 몇 년 전부터 공업계 특성화고 학과의 신입생 미달 사태로 학급수가 줄어들어 학교운영이 어려운 곳이 많아졌다. 근무하는 컴퓨터응용기계과도 작년에 3개 반 66명의 모집 정원의 3분의 2도 채우지 못했다. 매년 11월 초 입학전형이 실시되는데 올해 10월초 집계한 학교별 학생 지원현황을 보면 정도가 더 심각해졌다. 이 통계자료에서 눈에 띄는 사항은 내신 200점 만점의 130점 이하에 해당되는 수백 명의 학생이 일반고 진학을 희망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학교 성적이 최하위권인 학생도 본인이 원한다면 일반고에 문제없이 진학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는 지역사회 학부모들의 요구에 의해 교육청이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선택권 존중 정책의 일환으로 일반고 입학 정원을 증원한 것에 따른 것이다.

시흥 인근 부천, 안양, 군포에 있는 공업계 특성화고도 학생들의 지원이 현저하게 줄어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중학교 학생 수의 급감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특성화고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이 좋지 않아 학업능력이 부족해도 일반고 진학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중학교에서 기초학력이 부진한 최하위권 성적의 학생들도 진학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일반고 진학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성적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일반고로 진학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운영이 어려워진 학교가 시장 원리에 의해 퇴출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27.8%이며 세계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 3위권의 제조업 강국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총 2,367개교(학생수 133만명) 중 약 20%에 해당하는 489개교(약 21만 명)가 특성화고이며, 국내 지역 중 가장 많은 중소기업들이 운집해 있는 시흥 시화공단, 안산 반월공단, 인천 남동공단 일대의 공업계 특성화고 마저 신입생이 없어 문을 닫는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본교는 작년부터 코로나19의 여파로 일자리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현장실습생을 원하는 학교 근처 소재 중소기업에서 100여개 이상의 취업의뢰서를 받는다. 그러나 3학년 학생 수가 크게 줄어 몇몇 회사 밖에 실습생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공업계 특성화고도 살아남기 위해 미래 직업세계의 변화를 반영한 학과 개편, 교육과정 개선, 학생 눈높이에 맞춘 수업방법 적용, 학과 체험활동, 각종 직업기초능력 향상 프로그램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활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이와 더불어 교육청의 일반고 정원을 증원하는 정책을 통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 정책을 통해 일반고로 진학한 하위권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일반고는 내신 190점대의 학생부터 130점 이하의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가르쳐야 하므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교육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많은 일반고 3학년 학생들이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국비 직업위탁과정을 지원하였고 그 인원수가 특성화고 정원 미달 학생 수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반고 졸업 후 국가 세금이 투입되는 직업훈련에 참여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공업계 특성화고는 직업훈련기관보다 더 양질의 교육프로그램과 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잘못된 교육정책과 편향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현재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학업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일반고 진학을 선택하고 추후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대학을 졸업할지라도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직업훈련기관을 찾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병폐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대학진학을 위해 일반고를 선호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을 당장은 바꿀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일반고 입학 정원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공업계 특성화고를 살리는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