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

과거 우리나라는 입시제도가 갑자기 바뀌곤 했다. 1969년 7월 갑자기 서울대학교가 입시 과목을 전(全)과목으로 바꾸었다. 과학은 별로였으나, 사회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용산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세계사 수업시간. 날카로운 모습의 김철수 선생님은 문답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프랑스 혁명이 언제 일어났지? 혁명의 3대 이념은 무엇이지? 공포정치를 한 인물은 누구이지? 속사포로 던지는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1789년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입니다. 로베스피에르입니다. 훗날 어떤 친구가 자신도 답을 알고 있었는데, 영상이가 어떻게 답하는지 지켜보았다고 들려주었다.

예상대로 물리는 빵점이었지만, 세계사를 비롯한 사회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서울문리대 서양사학과에 합격했다. 선생님은 서울문리대 국문과를 나오셨지만, 사학과를 부전공했고 역사가 스케일이 큰 학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서양사학과에 진학한 것을 격려해주셨다.

대학 시절 내내, 아니 그 이후에도 김철수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이 학교를 옮기신 덕택에 이화여고도 방문했으나, 주로 댁으로 갔다. 지금은 퇴직하고 귀농(?), 안성 농촌집에 계시는데,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학문(學問) 해라. 전공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교수로 세상에 유익을 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1974년 2월 학부를 졸업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선생님’이 되고자 교직과목도 이수했는데, 공부하면서 살기로 했다. 1978년 9월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에 복학하면서 검인정 교원자격증을 신청했다. 그런데 신청 자체가 거부되었다. “1975년 2월 이전 졸업자는 1976년 2월 이전에 검인정 교원자격증을 신청해야 한다”로 규정이 바뀐 것이다. 고등학교 교사가 되려는 나의 꿈은 좌절되었다.

‘인생만사(人生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인가. 대학원 석사학위를 마치기도 전에 ‘고등학교가 길이 막히니 대학에 자리가 나기’ 시작했다. 재수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정원이 두 배로 늘어나자 갑자기 대학교수가 부족해진 것이다. 1982년 3월,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가 되어 2018년 2월 퇴임까지 36년간 외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 사학과 명예교수로 퇴직했다.

2019년 4월 8일(월) 서울 강남구 도산(안창호)기념관에서, 나의 마지막(?) 학술서인 『코리아타운 사람들』 북파티(Book Party)를 가졌다. 많은 친구와 선후배가 참석해 축하해주었는데, 이날 최고의 축사는 50년 동안 늘 따뜻한 격려로 용기를 잃지 말라고 힘을 주신 김철수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참 행복했다. ‘아직도 사랑을 주시는’ 선생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