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철학자들의 이름이나 사상을 딴 가요들이 등장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20년에 나온 나훈아의 ‘테스형’이 그렇고, 그보다 한참 먼저 나온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Amor fati)’가 그러하다. 어느 젊은이가 인터넷에서 “내 인생은 이 노래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고 찬사를 보낸 가수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 파티’가 인기를 얻었다. 이 곡은 원래 2013년에 나왔으나, 뒤늦게 빛을 보게 되었다. 워낙 신나는 노래이다 보니 ‘Amor Party’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노래 덕분에 김연자는 ‘갓 모르 파티’, ‘갓 연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모르 파티’는 ‘운명(Fati)을 사랑(Amor)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 말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Nietzsche)다. 그는 1882년에 펴낸 자신의 저서 『즐거운 학문(Die frohlich Wissenschaft)』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 니체는 인간이 다시 산다 해도 생애의 고통과 기쁨,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이 같은 순서로 되풀이될 것이니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것이 ‘아모르 파티’라고 했다. 운명은 모든 것이 나아갈 길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서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말한다. 이것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깨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운명 같은 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시간강사를 포함하여 대학에서 35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교직은 나의 운명이었다. 학생들에게 “후회도, 미련도 없다”라는 말을 끝으로 운명적 자리였던 강단을 떠났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의례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진정한 내 마음이다. 그렇다고 나의 인생 전체가 후회도, 미련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미련도 많고 후회는 더 많다. 후회도, 미련도 없는 것은 교직 생활에 한정한다. 후회가 없는 것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한 바와 같이, 교직자로서 “배우는 데 싫증 내지 아니하고(學而不厭), 남을 깨우치는 것을 게으르지 않았다(誨人不倦).”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보직 제안에는 손사래를 치며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만 힘썼다. 가르치는 일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한국은행·대한불교조계종·대학 등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서 직원·스님, 그리고 교수들에게 교육학, 특히 교수법에 관한 강의를 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부터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에 이르기까지 하늘이 준 나의 티칭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으므로 그간의 교직 생활에 후회가 없다. “수업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뒤를 돌아보면 항상 교수님의 연구실은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퇴직이 다가오면 좀 여유를 즐길 법도 하련만, 끝까지 자신의 분야에서 정진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다. 어느 학생이 보낸 편지처럼, 나는 떠나오는 날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나에게 주어진 정년까지 교직을 수행했기에 그 이상 미련도 없다. 나는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그 직을 즐겁게 수행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직업이나 사람은 많지 않다. 한 자료에 의하면, 조사 대상 기업의 39.5%만이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고, 정해진 정년까지 일하는 직원의 비율은 32%라고 하는 상황에서 6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까지 일했으니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은 헛된 과욕이다. 내가 가르쳤던 젊은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회를 살아갈지 불투명하다. 사회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할수록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요즘처럼 국내외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이러다 정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된다면 미래는 혼돈의 시기가 될 것이다. 노력만 하면 ‘개천에서도 용 날 수 있었던’ 시기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정년을 맞이했으니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취업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사회·경제적 부담만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살아가야 할 운명 앞에 선 젊은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능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하늘이 내리는 준엄한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하늘은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를 일이다. ‘진인사대천명’의 정신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모르 파티’의 삶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