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산 서울백석중학교 교장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자전거는 인류가 만들어낸 발명품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 중의 하나라고 한다. 친구들과 대화 중에도 기승전 자전거로 빠져서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나는 자전거가 좋다. 28년여 중학교 기술과 교사로 학생들을 지도할 때 특히 자전거가 나오는 기계요소 단원이 재미있고 실생활에 적용할 유용한 자료가 많아서 시간을 더 배당했던 기억이 난다.

자전거의 장점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첫째, 교통비, 기름값 등 돈이 절약된다. 둘째, 스트레스가 풀리고 허벅지가 단단해지며 건강에 좋다. 셋째, 공해가 없고 친환경적이다. 넷째, 학생들과 함께 즐길 수 있고 교육적 효과가 큽니다. 다섯째, 주차 및 휴대하기 편리하다.

교육은 말로만 하면 0점, 직접 보여주고 함께 가면 100점이라는 소신을 갖고 정년을 1년여 앞둔 시점에 내가 자전거를 좋아하고, 수업자료로 활용해 보고, 학생들과 함께 즐기고, 지금은 자전거로 20여년 출퇴근하면서 느낀 자전거 인생철학 몇 가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자전거는 자동차에 비해 느리다.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출퇴근 시 자전거 길로 꾸준히 멈추지 않고 페달을 밟으면 신호에 막히고 교통체증을 겪는 자동차와 도착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사람이 1시간에 할 것을 2시간 투자하여 꾸준히 노력하면 결과는 비슷할 수 있다. 이때 생각나는 영어 속담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느림의 미학, 꾸준함의 철학을 배울 수 있다.

둘째, 자전거를 타다 보면 고갯길을 만난다. 제 출퇴근길 통일로에 무악재 고개가 있다. 정상의 순간은 아주 짧다. 내려올 때는 신이 난다. 우리 인생에도 힘든 때가 있고 또 잘 나갈 때도 있다. 어려움이 지나면 좋은 때가 오기 마련이다. 이때 돌고 도는 순환의 원리,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배운다. 그런데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올 때 인생이 아주 잘 나갈 때 아차 오만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배운다.

셋째, 자전거를 탈 때는 기우는 쪽으로 핸들을 더 틀어야 넘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돌리면 넘어지게 되어있다. "기울어지면 기울어지는 쪽으로 좀 더 기울여라." 이는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더욱 파고들어야 살길이 생긴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문제를 피하면 지는 것이다.

넷째,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를 딛고 한번 방법을 익히고 나면 두 바퀴의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달려 나가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신나는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 한 번 익힌 자전거 타기는 평생 동안 써먹을 수 있다. 몇 년간 안 타다가 갑자기 자전거에 올라가도 금방 탈 수 있다. 내 몸이 자전거 타기를 기억한 것이다. 젊을 때 겁내지 말고 도전해서 한번 익혀두면 평생 유용한 재산이 된다.

다섯째, 학교에서 배운 ‘관성의 법칙’이나 ‘마찰과 힘’ 등 과학적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자전거는 달리지 않고 멈춰 서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기술이다. 전문 용어로 스텐딩이라고 하는데, 우리 인생도 가만히 멈춰 있으면 발전이 없지 않은가. 자전거가 달리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페달을 계속 밟아 나아가야만 삶의 보람이 더욱 커진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 할 수 있다.

여섯째, 자전거는 먼 곳을 보고 타야 넘어지지 않는다. 자전거 타기는 '코앞의 일만 쳐다보면 넘어진다'는 삶의 진리를 가르쳐 준다. 너무 근시안적으로 눈앞의 이득만을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자전거 타기는 지금 비록 속도는 느려도 오르막길에서 힘들어도, 문제를 피하지 말고, 먼 곳을 보면서 계속 달리라고 말하고 있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은 빠르게 속도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고 오래오래 평생 안전하게 타는 사람이라고 한다. 몇 번의 이벤트가 아닌 ‘일상에서 자전거 이용하기’ 등 사소하지만 계속할 때 더욱 가치가 높다.

필자는 요즘도 평일에는 편도 15km 정도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주말과 방학에는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등굣길에 마주치는 우리 학생들에게 예순이 넘었고 정년을 앞두고도 열심히 자전거 타는 교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울림이 있을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교장이 체통 없이 자전거를 탄다”고. 영화 ‘자산어보’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리 조선은 외우는 공부만 하다가 나라가 망했다”고… 요즘 학생들에게 자전거는 구질구질한 것이 아니고 지구를 구하는 ‘핫’하고 ‘쿨’한 탄소중립 아이템의 하나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